주체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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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실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1.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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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께서는 “알고지은 죄보다 모르고 지은 죄가 크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잘못을 모르면 같은 행위가 끝없이 반복되고 결국 어느 순간에 가서는 악행(악업)이 당연한 일이 되기 때문이며,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글은 특정행사의 예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전반에 너무나 당연시 되는 현실에서 문제를 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음에 개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나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으므로 반성적 입장에 있음을 미리 밝힌다.

지난 14일 보령 성주사지에서 문화재청 산하 민간단체 행사인 ‘2021 문화재지킴이 전국대회’가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충남도 부지사, 보령시장 등 관계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필자 역시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신청하면서 민족의 삶 속에서 펄펄 뛰어야 하는 우리 문화를 새삼 지켜야 한다는 현실을 아파하고 있는 터라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에 도착했고, ‘우리문화를 지킨다’는 행사의미나 아무런 특색을 찾아 볼 수 없는 밋밋한 행사장, 누구에게 보여주려는지, 서툴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로자 시상 예행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문화의 바탕은 의식주가 아니던가? 행사가 시작됐고 우리 옷을 입은 사람은 스님 네 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 전부가 어렵다면 최소한 사회자, 도우미, 문화재청장 정도라도 우리 옷을 입었으면 하는 안타까움, 이어지는 축하공연 태평성대를 기원한다는 태평무, 배경의 화면에는 춤의 의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창밖으로 비춰지는 쓸쓸한 그림, 도저히 신명, 열정, 역동성의 민족으로 식민지와 내란(6·25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 중 유일하게 선진국을 이룩한 우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오히려 행사를 초라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여느 행사와 다를 바 없는 지루한 진행, 이어지는 부대행사장으로의 이동, 안내하는 도우미들은 하나같이 “이쪽으로 가실께요” “사진 찍으실께요”하면서 어이없게도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를 철저히 파괴하고 있음에도 관계자의 지적이 없었다. 아무리 민간주도의 행사라 할지라도 문화재청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청장과 단체장들이 참석하는 행사는 국가공식 행사에 준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과하게 표현하면 국가행사에서 사회자가 “애국가 제창이 있을께요”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시와 수필 등을 쓰는 필자는 사투리를 매우 소중한 언어자산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문이나 공문서 등에 사투리를 사용하면 의미전달에 왜곡이 일어나므로 표준어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만약 국가시험에서 “다음에서 정답을 고르실께요” 한다면 그 문제가 성립이 될까 싶다.

의례, 의식, 행사 등이 필요한 것은 형식이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물론 개인들도 통과의례 등과 일의 시작과 끝에 기념행사를 하고, 돼지머리 고사라도 지내야 마음이 편하며, 상갓집과 예식장은 차림새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국가 위상에 걸맞는 국가의례를 만들어야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애국가만 보더라도 작곡자는 친일파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가사는 국가영토를 한계 지어 역사를 포기하고 있고, 엄연히 우리 음악이 당당히 있음에도 침략군이 남기고 간 가락으로 부른다. 우리의 국가를 우리의 기상과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가락으로 부르는 것은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으면서도 세계화를 말한다. 우리 것에 바탕없이 세계화, 세계 일류국가라 한다면 그저 남의 꽁무니만 따라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내년이면 새로운 지방정부가 들어선다. 국가 차원이 어렵다면 우리 홍성이라도 용기를 내어서 우리의 가락과 우리의 옷을 입는 행사의례 등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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