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處士)의 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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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處士)의 길〈3〉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1.12.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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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을 보면 돕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붕우[사업하는 사람들] 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 형제 자매 간에는 다툼이 없어야 하며 화목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해야 한다. 정치에 나아간 자는 하늘이 만 백성을 낸 뜻을 헤아려 인정(仁政)을 펼쳐야 하며[“君子上達”], 처사로 살아가는 자는 백성의 생업을 안정시켜 국가의 재정을 돈실하게 하여 나라를 아래로부터 굳건하게 해야 한다[“小人下達”]. ‘상달’이든 ‘하달’이든 거기에는 모두 인간의 정이 녹아 있는 것이다. 출사와 처사 사이에는 상하의 구분이나 존비(尊卑)의 차별이 없다. 그것은 단지 “세(勢)”가 만들어 낸 편의상의 구분일 뿐이다. 

처사들은 자신의 이익보다 민생의 이익에 전념했다. 유학의 이상은 ‘충서’에 있기 때문이다. 출사한 자들 앞에는 이른바 ‘세(勢)’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자신을 등용해 준 왕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 있었지만, 처사들에게는 그런 의무나 규정 같은 것이 애초부터 있지 않았다. ‘충’은 오로지 국가의 안위, 백성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쓰인 것이다. 유학의 도를 실현하는 데는 처사들의 삶이 오히려 홀가분했던 것이다. 

전제군주 국가에서는 왕과 국가가 등치되고, 왕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등치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안다. 국가와 군주는 다르다는 것을. 그러나 왕에게 등용(出仕)된 자들은 그걸 알면서도 왕의 이익 추구에 봉사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다. 그것이 내키지 않으면 정치계에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처사에게는 그래야 할 의무나 도덕 같은 것이 없다. 군왕을 존경하는 것은 단지 그가 하늘의 명을 받아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데 필요한 정치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백성이 있다면 그들을 돌볼 왕[정부]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왕에 대해 공경심을 표시할 뿐이다. 다만 그것은 왕이 백성들의 삶 곧 인간다운 삶을 보호하려고 할 때 뿐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충성을 바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출사한 관리들에게 요구된 ‘충’의 덕목은 국가와 동일시 된 ‘군주’를 향해 있지만, 처사들이 실현하는 ‘충’의 덕목은 오로지 국가[民生]를 향해 있는 것이다. ‘공사(公私)’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출사한 관료들에게는 ‘공사’의 기준이 왕조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지만 처사들에게는 민생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었다. 공자가 말한 ‘충서’의 도덕에 철저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출사한 관리들은 나라가 평화로울 때에는 군주와 더불어 복록(福祿)을 누리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모욕을 당하거나 죽임에 내몰린다. 청사(靑史)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자자손손 전해지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처사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평소에는 유학의 교양을 연마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주력하고, 국정이 문란할 때에는 가산(家産)을 털어 민생을 돌보며 어떠한 경우에도 민생이 피폐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한다. 민생의 안정이 인간다운 삶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평소에 베푼 감화(感化)를 바탕으로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그것이 민생을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름은 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며 구전(口傳)으로 남아 전설로 전해질 뿐이다. 처사들은 공을 이룬 뒤 그에 머물지 않는다. 선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사한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할 만한 여유나 자유조차 없다. 왕이 주는 것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게 의무요 ‘충’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욕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처사는 이런 것을 구차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출사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만의 도를 실현하며 살았던 것이다. 
온갖 부덕한 무리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던 시절,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치명(致命)을 마다하지 않았던 홍주 유림들을 기리며 이 글을 쓴다. 그들 처사들이 걸었던 길을 오늘 우리 향사(鄕士)들이 간다. “높은 산은 올려다 보고 먼 길은 가려 했던” 공자의 지학(志學)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太史公曰 詩有之 「高山仰止, 景行行止.」 雖不能至, 然心鄉徃之.”(『사기』 「공자세가」 ‘태사공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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