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지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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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지지의 힘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2.16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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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과거의 아픈 상처일 수도 있고, 현재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떠안는 것일 수도 있다. 

D씨는 중년 여성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초등학생 딸은 평균 또래보다 신장과 체중이 미달이다. 2년 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후 약을 복용하고 있고, 과다한 유튜브 시청과 게임 사용이 조절되지 않아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되다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남편은 30대 때, 교통사고로 안구에 이상이 생겼다. 그로 인해 약을 복용해도 신체적 통증이 빈번하다보니 모든 일에 예민하고 날카롭다. 더구나 친구처럼 가까웠던 친정아버지의 자살은 온 가족에게 충격이었지만, D씨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삶이 무기력하고 의미가 없다. 

하지만 딸이 조금만 열이 오르고, 몸이 아프다고 하면 ‘혹시나…’하는 마음에 불안감이 급증하지만 생에 대한 용기도 같이 솟구친다. 왜냐하면 자신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입원과 항암치료를 거듭하면서 완치 판결을 받았지만, 그 후유증이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D씨는 우울하고 슬펐다. 엄마라는 대상은 어렵고 불편했지만, 아버지는 편안한 분이었다. 내성적이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D씨에게 혈액암 진단은 모든 일상생활을 접고 병원생활만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불면증과 고열 등으로 매일매일 탈모 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소리 내지 못하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3년 후 혈액암이 완치됐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일상으로의 회복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함께 움직이다보면 숨이 차고, 체력이 급격히 저하돼서 울기도 많이 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어린이집에서 힘들었지만,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임신하게 돼 전업주부로 생활하게 됐다. 

매닝 월시(Manning Walsh, 2005)는 ‘가족지지’를 자신을 둘러싼 중요한 타인인 가족으로부터 얻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원조라고 정의했다. 건강한 가족은 가족 구성원 간에 가족 정체감을 형성케 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가족 구성원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사회 심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가족은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지지받고 있다고 인식하며,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게 하는 중요한 자원이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고, 일상생활에 필수 영양소와 같은 것이다. 

필자는 딸의 스마트폰 과의존 때문에 상담실에 온 D씨 가족을 여러 차례 만났다. D씨의 딸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필자에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엄마가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우 높았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보이지 않거나 전화 연결이 되지 않을 때면 이성이 마비되고,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에 화가 난 남편은 딸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고, D씨는 더욱 외부활동에 제약을 받고 모든 일정을 딸에게 맞춰야 했다. D씨와 딸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도 딸의 요구에 D씨의 몸은 온전히 응하기 어렵다.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 세우지만, 주변인으로부터 제공되는 사회적·정서적 지원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딸과 한 공간에 있지만 딸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어하기 어렵고, 부모로서 권위와 일관성을 갖고 양육하기가 매우 버겁다고 느낀다. 

D씨 부부는 약속한 상담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상담실에 내방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들을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상담사를 통해 정서적 지지를 경험하면서 부부가 짊어지고 있는 서로의 짐들이 보이고, 딸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또한 힘을 내어 딸과 함께 만들었던 종이접기나 인형 만들기 등이 딸에게 매우 좋은 영양분으로 작용하고 있음도 알게 됐다. 더 나아가 사람이 먹는 필수 영양소 못지 않게 부부간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언행이 매우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도 인식하게 됐다. 

이상적인 부부는 서로 주고받는 것의 균형이나 독립, 그리고 의존이 균형을 이룬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 부부는 서로가 다른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자녀의 행동을 보면서도 각기 다른 개념을 갖고 갈등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가족원들의 긍정적 지지는 일상생활의 활력소가 되며, 건강한 면역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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