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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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 최윤종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2.1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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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물은 물길을 따라 흐른다.

홍성천 역시 그렇다. 높지 않은 산봉우리와 나지막한 동산을 닦아 주고 흘러 내려오는 녀석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읍내의 가가호호 사연을 담고 졸졸졸 흘러오는 녀석들. 때로는 하늘길을 타고 빗줄기로 내려앉아 모여드는 녀석들이 여기 실개천으로 모여드는가 보다.

어떤 경우 보기 드물게 고라니, 너구리, 혀를 길게 내미는 뱀과 눈이 마주쳐 시선 처리를 어찌해야 해야 할지 당황한 적도 있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군데군데 청둥오리와 백로는 좌향좌, 우향우 떼를 지어 다니는 물고기의 천적인지 사이좋은 친구인지 알아차리기가 힘들기도 하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들의 침입자가 되어 쓰레기를 줍는다는 명목으로 집게를 들고 다녔다. 어느 날 풀숲 사이 벤치에 앉아계셨던 할머니께서 긴 장화를 신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장만하면서부터 물길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가게 됐다. 마치 무법자인냥 들어가게 되면서 조금은 더 다른 세상을 보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스티로폼 조각들,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비닐 뭉치, 날카롭게 목이 잘린 유리병, 달콤한 과자가 담겨 있었을 법한 울긋불긋 터진 봉지들, 이렇게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는 그것들이 깊은 데 있었다. 이것들을 한데 모으고 나면 측은한 마음이 들고는 했다. 저마다 모두 왕년에는 여기저기 환영을 받으며 한 가닥을 했을 법한 녀석들이 지금은 이렇게도 흙뭉치와 함께 처절하게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아뿔사! 아마도 이 중에는 어쩌면 내가 무심코 버렸던 그 녀석도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원망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것들이 여기에 이렇게 모여들어 있었던 것이다. 

홍성천은 더 이상 물길만이 아니었다. 물과 더불어 함께 살고 싶은 육·해·공을 주름잡고 있는 녀석들이 목을 축이고 사는 길이었고, 어쩌면 쓰레기로 버림받은 굴곡진 녀석들의 살고 싶은 갈망의 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나도 여기에 발을 담갔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 냇가에 걸터앉아 종종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때 뺨으로부터 느끼는 것은 바람. 이 또한 생각한다. 여기에 바람이 지나가는구나! 이 길은 바람길이었다. 나만의 길, 사람의 길인 줄만 알았던 이 길이 하나님이 열어주신 그들의 길, 우리들의 길이었다. 함께 살아온 길 그리고 함께 살아내야 할 길이었던 것이다!
 

최윤종 <홍성침례교회 담임목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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