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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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다시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1.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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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임인년,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양력으로 1월 1일이 되면 자동으로 새해가 되지만, 아직도 민간에서는 음력 1월 1일이 돼야 새해가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운세를 중요하게 보는 명리학계에서는 양력 2월 4일경에 닿는 입춘(立春)을 해가 변경되는 기점으로 보는데, 입춘은 봄이 들어오는 것(入)이 아니라 겨울을 이겨낸 봄이 어느 정도 제 자리에 선다(立)는 뜻이 담겨있다. 입하, 입추, 입동 다 마찬가지다. 

임인(壬寅)년에서의 임(壬)은 천간(天干, 하늘을 나타내는 말로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뜻한다)의 아홉 번째 글자에 해당한다. 임(壬)으로 시작하는 해는 뒷글자가 무조건 양력 ‘2’로 끝난다. 임진왜란(1592년), 임오군란(1882년) 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임(壬)은 오행으로 양수(陽水)에 해당하고, 방향으로는 북쪽, 색깔로는 검은색을 뜻한다. 

임인(壬寅)년에서의 인(寅)은 십이지(十二支, 땅을 나타내는 말로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뜻하며 각각의 동물을 상징하고 있다)의 세 번째 글자로 오행상 양목(陽木)이며, 호랑이를 나타낸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올해 임인년은 색깔로는 검은 색, 동물은 호랑이, 즉 ‘검은 호랑이’의 해가 된다.

‘호랑이’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까이에 있었다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기억과 전설로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이야기라든지 한반도가 호랑이 형세로 생긴 사실은 우리 국민 누구라도 익히 알고 있다.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축구(KFA)의 엠블럼에 호랑이가 새겨져 있으며, 88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인 ‘호돌이’로 한국의 호랑이가 전 세계에까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이야기 해야 한다. 사실 담배가 일본에서부터 전해진 때가 광해군 시절인 1618년 이므로, 우리나라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아무려면 숲속의 왕자인 호랑이가 기관지에도 안 좋은 담배를 피우면서 거들먹거리기야 했을까마는, 아마도 손자 손녀 앞에서 ‘할아버지가 담배 한 대 피우며 호랑이 얘기 해주던 시절’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호랑이는 ‘애증(愛憎, 사랑과 미움)’의 동물이다. 우리 지역의 민담을 조사한 ‘홍성의 민담(1996년, 홍성문화원 발행)’을 살펴보면 홍성의 11개 읍면에 호랑이와 관련한 다양한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더러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호랑이가 사람과 동화돼 효행을 하거나, 묫자리를 잡아주거나, 형제처럼 지냈다거나 하는 선행의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호랑이를 ‘짐승’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처럼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는’ 착한 호랑이도 있지만 ‘곶감’에 놀란 어수룩한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날 밤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소리를 엿듣는데. 어머니가 “호랑이가 왔다. 울지 말아라”라고 말하는데도 아이가 계속 울자 호랑이는 내심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어머니가 “곶감 여기 있다”라고 하니 아이가 울음을 그치게 되는데, 호랑이는 곶감이라는 놈이 자기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때 소도둑이 들어왔다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이놈이 틀림없는 곶감이라고 착각하고,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났고 이후로 이 마을에는 호랑이도 없고 소도둑도 없어졌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호랑이와 곶감’ 전설이다.

이 전설은 사실, 일제 강점기때 교과서에 실린 내용으로 ‘조선동화집’, ‘조선전래동화집’에 실리면서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곶감’ 대신 ‘소나기’가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전설이 일본 중국 인도 유럽 등지의 호랑이가 자생하는 지역에도 존재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호랑이와 관련된 명당자리도 책으로 전하고 있는데, 풍수학자 최창조가 펴낸 ‘한국의 자생풍수-한국의 명당자료집’에 의하면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개물: 못 밖 서쪽 옆에 있는 마을. 굴목 뒷산에서 내다보면 호랑이가 개를 노리고 있는 형국(伏虎砂眠犬案)이며, 뒷산에 있는 五代兵權之地에 田榮圭의 선조가 조상 묘를 써서 자손이 번창하고 여러 명의 兵使(병마절도사)가 나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호랑이 입속의 비녀를 꺼내어 준 댓가로 호랑이가 잡아주었다는 묫자리도 있어 흥미를 더한다.

호랑이는 보통 귀엽고 친숙하게 그려지지만, 실제는 용맹하고 무서운 존재다. 호랑이가 남한에서 마지막 목격된 것이 지난 1924년 강원도 횡성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야생에서 볼 일은 분명코 없을 것이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기운이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올해는 부디 코로나의 망령까지 싹 걷어가 주길 기원한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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