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었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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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되었던 한 마디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2.05.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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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45〉

어느 마을에 들어가 「어르신들의 이야기 그림」 활동을 하게 되면 먼저 이장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장님은 마을을 대표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장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장이라는 직책은 마을공동체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우리 마을의 이장님은 참 어진 분이셨습니다. 우리 마을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셨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밤에 호롱불을 켜 놓고 그림을 그리곤 하였습니다. 엄마는 읍내로 일을 하러 나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이장님이셨습니다. 이따금 지나가던 길에 우리 집에 들르곤 하셨는데 그날도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문을 열어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공부하니?’ ‘아니요. 그림 그려요.’ 공부라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고쳐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공부란다.’ 이장님은 그림도 공부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자신감을 갖고 그림을 그렸고 나중에는 대학교에도 그림을 그리는 시험을 쳐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장님이 해주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관리 10구 박상만 이장님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마을 일 하시는 걸 보면 옛날에 나에게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신 고마운 이장님이 생각납니다. 

박상만 이장님은 그림도 잘 그리십니다. 색채를 풍부하게 쓰시고 그림에 이야기를 담을 줄 아십니다. 박상만 이장님의 그림 〈고향집〉에는 하얀 뭉게구름과 나무들이 울창한 산이 그려져 있고 마을을 지나 산으로 가는 길이 밝은 색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초가집 마당에는 닭 한 마리가 나와 있는데 소가 지나가는 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방금 내려놓은 것 같은 나무지게가 있고 참외밭을 지키는 원두막과 미루나무, 소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조용하고 풍성한 시골마을의 여름입니다. 이미지들이 선명하고 자세한 걸 보면 옛일들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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