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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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3〉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2.06.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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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큰아들을 친애하고, 가수가 되겠다며 가출을 밥 먹듯이 하던 작은 아들을 핍박하던 어떤 사람이, 가수왕이 된 작은 아들 덕분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향교 교육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전근대적인 교육과 윤리를 긍정하지 않는다. 가치관과 의식이 변했다. 더불어 인간다움의 모습과 내용도 변했다. 전통과 관습에 매어 자기 뜻을 펴지 못하는 이를 시대에 뒤떨어진 이로 생각하는 반면, 누구의 간섭도 거부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꿈과 의지를 실현하는 이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과 관습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던 노년 계층을 숭고하게 생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꿈의 내용도 변했다. 이제는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이에게 ‘숭고’라는 찬사를 헌정한다.

이제 향교도 향교 구성원을 위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재편해야 한다. 그 향교의 구성원이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향교의 교육도 그에 맞게 변화돼야 한다. ‘한학(漢學)’을 하는 향교에서 ‘유학(儒學)’을 하는 향교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예전부터 해 오던 것이니 어떻게든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은, 그 말이 생겨난 이유도 모르면서 오직 충절(忠節)만을 외치는 국수주의자나, 자고로 선비란, 자고로 군자란 이란 말을 되뇌는 고리타분한 딸각발이의 시대착오적 행태일 뿐이다.

유학의 가치를 살리려면 향교를 혁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단초는 교육에 있다. 새로운 교육을 시행해 구성원의 의식을 혁신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시대에 맞는 향교를 정립해야 한다.
예전에 사회의 지도자는 출사하기 전 향교에 나아가 직의 수행에 필요한 재주와 인격을 연마하고 검증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런 면이 모두 사라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향교에 개설된 교육 내용이 시세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의 임원이나 장 가운데 향교에 출입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분향(焚香)과 봉심(奉審)에 담긴 뜻도 모르고, 지금 자기가 분향하고 봉심하는 대상이 어떤 분인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분향을 하는 데에만 열심이고, 유학이 어떤 학문인지도 모르면서 공자가 어떻게 맹자가 어떻고 주자가 어떻고… 과연 향교는 이런 곳에 불과한 곳이었던가?

모든 교육을 학교와 사교육 시장에 빼앗긴 오늘날, 향교는 어떤 교육을 시행해야 하는가? 시대는 변했는데 옛날의 이상적 인간상만을 강요하는 교육이 무슨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언제까지 철 지난 옷을 입히려 하는가? 봄이 왔으면 멋도 부리게 해 주고 나들이도 가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중들이 꺼리는 유학과 향교를 만들려는 것인가?

향교에 출입한다고 해서 그가 곧 유생(儒生)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향교에 출입하지 않아도 유학의 도는 실천할 수 있다. 향교가 유학의 전당인 이유는 거기에 ‘유생’ 곧 사람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향교를 매개로 해서 유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생을 매개로 해서 향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되려면 향교 구성원의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상처를 입힌 손이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이 있다. 향교가 유생을 매개로 존재한다면, 오늘날의 유학·향교의 문제는 향교와 유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유생에게 있다. 우리 유생들이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취하고 무엇을 공부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향교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럴 때 유학의 가치도 소생할 것이다. 향교 구성원 제위의 각성을 촉구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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