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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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6.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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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민중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가사 일부다. 이 노래의 가수가 안치환이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이 노래 가사의 원작자가 박영근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다. 가사의 상당 부분은 박영근 시인이 1984년 출판사 ‘청사’에서 펴낸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에 실린 시 ‘백제6-솔아 푸른 솔아’에서 따온 것이다.

시집 <김미순傳(전)>은 박영근 시인이 1993년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한 세 번 째 시집이다. 1987년 두 번 째 시집 <대열>(풀빛) 간행 이후 6년 만에 출간한 시집으로 ‘신동엽 창작기금’을 수상했다. 1천 5백 행에 이르는 장시 ‘김미순傳’과 20여 편의 시를 담고 있다. 

시인이 후기에서 “변화한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함께 바라보려는 인내와 통찰력 없이, 자본의 논리에 그대로 한몸이 된 지식인 언론의 예단과 흥분 속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들이야 말로 운동의 침체와 함께 벽이었다. 벗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내 안에 그 포즈들 완강한 바 있었고 그 벽에 갇혀 비틀거렸으니까. 참으로, 그런 과장 없이, 변화해 가는 현실과 변할 수 없는 현실운동의 진보적 지향 사이에 긴장으로 자신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문학하는 자세가 아니던가.”라고 피력했듯, 시인의 투철한 고민과 자성이 밑바탕이 되어 펴낸 이 시집에서 주목되는 시는 마지막 3부에 배치된 장시 ‘김미순傳’이다. 

장시 ‘김미순傳’은 판소리 사설조 형식에 서정을 듬뿍 담은 서사시다. 정권과 자본의 노조활동 등 노동탄압이 극심했던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시대상을 묘사한 시는 가없는 슬픔과 분노를 촉발시킨다. 자본주의 삶의 유혹과 환상에 빠진 평범한 여성 노동자 미순이를 주인공으로 내 세웠다. 주인공 미순이는 권력의 공작에 의한 마수에 걸려 프락치로 활약한다. 그로 인해 동료 노동자들은 노조 사무장이 구속되어 감옥에 갇히는 등 다양한 노동 탄압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본 지난한 노동자의 피맺힌 삶에 각성한 미순이는 프락치 운영실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더 이상 협조하지 않다가 처참하게 죽는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이구는 해설에서 “장시 ‘김미순傳’은 그 규모나 형식, 야심적 기획에서 요즘 그만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독특한 어법과 일정한 서사, 주제의 육화 등으로 만만치 않은 문제작이 되고 있다”라며 “풍자와 익살과 희롱의 어조는 시련을 예고하는 각성과 처참히 유린되는 미순의 생애로 인해 비장(悲壯)을 더불게 된다”고 평했다.

1958년 생인 저자 박영근은 구로 3공단 등지에서 노동자 생활을 한 대한민국 최초의 현장 노동자 출신 시인이다. 1981년 <반시(反詩)>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6년 47세 젊은 나이에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시인과 인천시 부평에서 1989년 말부터 형제처럼 지냈다. 그 인연으로 부평구 신트리공원에 그를 기리는 ‘솔아 푸른 솔아’ 시비를 건립하는 일에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참했다. 시집 <김미순傳>의 일독과 함께 시비 탐방을 권한다. 노동문학에 대한 오독(誤讀)과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날 것이다. 시인이 “정세훈 형님께”라고 서명해 준 시집 <김미순傳>을 다시 대하니 마냥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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