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시대와 고교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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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시대와 고교평준화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8.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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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가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사돼 4개월 반의 긴 여정을 떠났다. 하지만 다누리호는 일론 머스크가 의결권의 78%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민간기업 스페이스X사의 발사체 팰컨9에 실려서 우주에 진입했다.

외국의 기술과 장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우주 발사체 기술 수준이 미국의 민간기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민국이 지구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주개발 경쟁에 돌입하였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인정한다. 

생존을 위한 경쟁은 생명의 탄생 이후로 계속돼왔고, 경쟁에서 뒤처진 생명 집단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최근에 한국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은 3~4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절멸(絶滅)한 원인에 관한 과거의 가설을 뒤집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 이전에는 30만 년 동안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던 네안데르탈인의 절멸 원인을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거나, 코로나19와 같은 당시의 어떤 병원균 때문이라는 가설로 설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가설은 소뇌(작은골) 크기에 따른 사회 구성 능력과 기초대사량의 차이 등으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와의 먹거리 확보 기술 등 생존경쟁에서 점차 뒤처졌고, 결국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에 1~4%의 흔적만을 남긴 채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요소가 비슷한 집단 사이에서는 경쟁력이 보다 뛰어난 집단만 살아남을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인 우리 인간은 이런 경쟁심과 경쟁력을 뇌와 몸에 지니고 태어난 생명체들이다. 이처럼 생명체에 있어서 ‘경쟁’, ‘경쟁력’, ‘우월한 경쟁력’은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인간이나 기타 다른 생명체 뿐만아니라, 기업이나 국가 같은 조직도 경쟁력을 잃으면 도태를 면할 수 없으며, 이는 자명한 진리에 속하는 명제(命題)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쟁을 죄악시하는 제도가 있다. 

이른바 고교평준화(고교 무시험 배정)라는 이름으로 추첨을 통해 거주하는 주소지를 기준으로 진학할 고등학교를 배정해주는 교육제도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명분은 암기식·주입식 입시 위주 교육의 폐단을 개선하고, 고등학교 간 학력 격차를 줄이며, 대도시에 집중되는 일류 고등학교 현상의 폐단을 없앤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11년에 이미 이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수험생이 원하는 학교에 응시해 성적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옛날 제도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형식적으로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공립 특목고와 예술고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비평준화 일반계 공립고가 있고, 영국에는 7년제 특목중·고가 있으며, 공립고에 대해 평준화 제도를 선택한 다른 많은 선진국에서도 사립고에 대해선 자율적 학생선발권을 보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고교평준화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한국의 고교평준화는 학생들에게 과열 경쟁을 면해주고자 시행되었다. 하지만 평준화 지역이면서도 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고교들은 여전히 명문고라고 불린다. 학생의 거주지는 학생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선택에 따라서 정해진다. 부모의 능력이 있으면 학생이 외형만 평준화 학교인 강남의 명문고를 다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 있는 진짜 평준화 고교를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학생의 학업 능력과 선택이 아닌 부모의 경제 능력과 선택에 따라 명문고를 다니거나 그렇지 않은 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것은 고교평준화 제도가 평준화라는 목적달성에 실패했다는 명백하고도 뒤집을 수 없는 근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땅에도 비옥한 땅, 척박한 땅이 있다. 산에도 높은 산, 낮은 산이 있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의 능력도 ‘차이(差異)’가 있는데, 그 차이를 무시하고 같게 취급하는 것은 바로 ‘차별(差別)’에 다름 아니다. 

육체적 능력이 ‘탁월한’ 체육특기자를 어릴 때부터 선발하여 국가가 직접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시키고, 예술에 ‘탁월한’ 자질이 있는 학생은 예술고에 입학하여 그 재능을 키울 기회를 제도적으로 마련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 외 ‘기타 학생’들에게는 왜 ‘아무 학교’나 다니라고 국가가 강요하는가?

국제적 무한경쟁시대, 우주개발시대에 돌입한 현재 우리의 경쟁상대는 국내무대가 아닌 국제무대에 존재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청소년들의 과열 경쟁을 줄여준다는 명목하에 고교평준화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고집하고, 나아가 특목고 폐지까지 주장하는 것이 청소년들과 대한민국의 경쟁력, 미래 생존력을 앗아가는 결과를 야기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우리나라가 첫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호 발사에 성공해 우주개발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이 시점에서 고교평준화 제도와 특목고 폐지,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상권 <변호사·전 국회의원·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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