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사회적 실천 출발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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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사회적 실천 출발점 되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9.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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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큰 파장 일으킨, 채광석 편編 〈노동시선집〉

1985년 5월, 당시 노동현실과 노동자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룬 시들을 모은 시집 <노동시선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어 주목을 받았다. 고 채광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엮은 이 시집은 제1부에 노동자들이 직접 쓴 시, 제2부에 전문 문학인들이 쓴 시, 제3부에 노동운동 과정에서 숨진 사람들에 대한 추모 시를 담고 있다.

70년대 들어 전태일 열사 분신이후 격화된, 모순된 종속적 산업화 속에서 노동문제를 직접 집약적으로 다룬 전문 문학인들의 노력이 잦아들고 피상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출간되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또한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구체적 생활에 가해지는 모순이 확대 심화되는 상황에서 직접 주체와 대상이 되어 표출한 목소리를 담아내어 문단은 물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제1부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인의 시가 다수 수록된 이 시집은 이후 노동문학은 물론 민중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와 관련, 시집을 엮은 고 채광석 시인은 “이 시집은 노동현실의 구조적 모순의 극복으로서의 문학적 실천, 문학의 사회적 실천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무명의 노동자 시인은 시 ‘새벽’에서 “남들이 다 잘 때/새벽같이 일어나/일터로 향한다/컴컴한 새벽길/ 누가 골목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다/ 이렇게 뛰며 살아가는데/언제까지 계속/뛰어야 할까”라고 진술하고 있다.

엮은이 고 채광석 시인은 노동 민중문학의 구심점 역할은 물론, 싸움을 감독하고 사기를 북돋워 준다는 사전적 풀이 독전(督戰)의 의미가 담긴 ‘민족문학의 독전관(督戰官)’ 역할을 했다. 투사적 ‘노동자 시인’ 박노해 시인을 발굴했으며,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호헌반대 1백만인 서명’과 ‘문학인 193인 개헌촉구 성명’ 운동 등에 앞장섰다. 또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를 주도적으로 재창립했다. 

1948년 출생한 시인은 안타깝게도 1987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한국문단은 1970년대와 1980년대 군부독재 권력에 맞서 싸운 그가 타계함으로 큰 충격에 빠졌었다. 그는 5년 남짓 짧은 문단 활동 기간동안 ‘운동으로서의 문학’에 적극 매진,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노동문학’ ‘민중문학’ ‘민중적 민족문학’이 1980년대 문학의 주류로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총무간사 및 집행위원, 민통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반독재투쟁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그의 행적을 기려 한국작가회의는 그를 지난 2004년 명예사무총장으로 추대했으며, 정부는 2022년 6월 ‘6.10 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에서 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훈했다. 2000년 7월 12일 고향 안면도 휴양림에 건립된 추모시비에 새겨진 그의 시 ‘기다림’을 전제한다.

기름진 고독의 밭에/불씨를 묻으리라//이름 모를 산새들 떼지어 날고/계곡의 물소리 감미롭게 적셔오는/여기 이 외진 산골에서/맺힌 사연들을 새기고/구겨진 뜻들을 다리면서/기다림을 익히리라//목을 뽑아 진리를 외우고/쌓이는 낙엽을 거느리며/한 걸음 두 걸음 조용히 다지다가/고이 목을 바치리라//대를 물려 가꿔도 빈터가 남는/기름진 고독의 밭에/불씨를 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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