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심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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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심어주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2.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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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양심적인 삶을 노래한 서정홍 시집 《58년 개띠》

“이렇게 쉽고 깨끗한 우리 말로, 삶 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말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시집은 없으리라 봅니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고달픈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내 거친 손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서정홍 시인이 지난 1995년 9월 ‘도서출판 보리’에서 펴낸 시집 《58년 개띠》 뒤표지에 김해화 시인이 시집의 시편들을 읽고 밝힌 소감이다. 

1958년 마산에서 태어난 서정홍 시인은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소규모 작은 공장을 거쳐 창원공단의 대한중기와 효성중공업 등에서 공장 현장노동자로 노동했다. 

1990년 제1회 ‘마창노련문학상’과 1992년 제4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시인은 시집 《58년 개띠》, 《아내에게 미안하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못난 꿈이 한데 모여》, 《감자가 맛있는 까닭》, 《쉬엄쉬엄 가도 괜찮아요》, 《그대로 둔다》, 동시집 《윗몸일으키기》, 《우리 집 밥상》, 《닳지 않는 손》, 자녀 교육 이야기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 산문집 《농부 시인의 행복론》 등을 펴냈다. 현재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 나우실마을에서 풍성한 마음을 지닌 이웃들과 함께 농사짓고 있다. ‘우리나라 좋은 동시문학상’과 ‘서덕출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58년 개띠》에는 표제 시를 비롯해 <작업일지>, <재 형 저 축>, <아내의 손> 연작시, <아들에게> 연작시, <산업재해>, <한낱 기계로 보이나 보다>, <꽃보다 더 아름답게> 등 시인이 10여 년 동안 공장 현장에서 잔업과 특근에 지친 몸으로 쓴 훌륭한 시편들이 가득 담겼다. 

시인은 시집을 통해, 시인이 시집 서문에서 “80년대에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겹게 살아온 제 이웃들은 아직도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그분들과 함께 부대끼며 떳떳하게 살아온 이야기고, 부끄럽게 살아온 이야기며, 뭔가 아쉬움이 남는 듯한 이야기 들입니다”라고 밝혔듯, 당시 공장노동자로서 체득한 자신의 양심적인 삶을 진실하고 감동적인 시편들로 승화시켜, 이 땅의 노동자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강희근 시인은 <진실의 말, 양심의 소리>라는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시인의 시는 양심으로 사는 삶의 세계이다. 이웃을 두고, 가진 자를 두고, 친구를 두고, 아내와 아들을 두고, 말을 두고, 자신을 두고 양심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반성하고 채근하고 다짐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일상생활 속의 이웃사랑을 일깨워 주며, 일반 독자들이 체험한 내용에다 이름을 붙여주는 자리에서 한없이 당당하다. 언제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양심이라는 살아 있는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58년 개띠 해/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마을 어르신들/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말이 씨가 되어/나는 지금 ‘출세’하여/잘 살고 있다//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맞바꿀 수 없는/노동자가 되어/땀 흘리며 살고 있다//갑근세 주민세/한 푼 깎거나/날자 하루 어긴 일 없고/공짜 술 얻어 먹거나/돈 떼어먹은 일 한번 없고//어느 누구한테도/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표제 시 <58년 개띠>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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