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홍성군에 작은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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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홍성군에 작은 부탁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2.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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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홍성은 3·1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3·1기미독립선언문’에 공약삼장을 보태셨고, 초지일관 그렇게 사셨던 만해 한용운 선사의 고향이며, 전국에서 유래 없는 작은 동네에서 184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금마면의 만세운동 등이다.

3·1운동 104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있는가를 뒤돌아본다. 필자는 여태 이룬 것은 없지만 지난 2007년 5월 “조국의 독립은 통일로 완성되며, 그 중심에는 항일운동의 시원(始原)인 홍주가 나서야 된다”는 평생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홍성으로 왔다. 다시 말해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족의 숙원인 통일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통일 후에는 인류평화의 기치로서 세계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통일을 이루고, 무엇으로 인류공영을 외칠 것인가를 묻는다면 만해의 ‘공약삼장’과 ‘조선독립의 서’에서 나타난 철학과 사상이라고 감히 답한다. 공약삼장 1장 “금일 오인의 차거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의 외침은 조선독립의 서 첫머리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로 귀결된다. 

자유와 평화는 결코 폭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일체 생명체의 본성이 실현되는 이상적 사회건설을 위해 ‘배타적 감정’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의 자유를 빼앗는 자나, 남에 의해 자유가 박탈된 자’ 양쪽 모두 불행하다는 통찰로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을 통렬히 지적한다. 당시 현실에서 “요즘 세상의 절대 진리가 바로 공법(국제법)의 천 마디보다 대포 한문이 더 낫다”며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힘에 의한 국제질서를 야만적 문명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 박노자는 “만해는 정신적인 면에서도 진정한 자아·개인적 도덕성 등 개체에 치중하는 칸트 사상에 비해서는, 득도를 통한 개인의 자유(解脫)와 일체 중생의 불성·구제를 상즉상리(相卽相離)의 논리로 조화시키는 불교 사상이 월등히 우수하다고 논파하고, 불교의 개체 자유론을 무시해 버린 양계초를 비판했다”고 덧붙인다.

만해의 우려대로 양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와 자타(自他)를 분리하는 유아론(有我論)의 세계관은 지금도 냉엄한 외교전쟁의 바탕을 이루며, 지구파멸의 핵과 인간을 위협하는 컴퓨터 기술 등으로 발전했고 인류의 공생·공영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핵과 환경문제 등으로 지구파멸이라는 일촉즉발의 현실에서 우리 홍성은 제국주의에 당당히 맞섰던 만해의 이름으로 민족통일과 인류평화의 횃불을 들어야 한다.

우리 홍성이 만해에 무관심한 동안 엉뚱하게도 3·1절만 되면 밑도 끝도 없는 유관순의 이름만 난무하다. 무슨 연유인지 유관순은 명확한 근거보다는 여론몰이식으로 선양되고 있다. 여러 문제 중에 하나만 살펴보면 유관순(柳寬順)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수형자기록부(쪽진 머리, 三十一로 보이는 수형번호의 사진)에는 키가 5척6촌0푼(169.7cm)으로, 뒷면에는 죄명<보안법위반 및 소요>, 직업<정동여자고등보통학교>, <대정10년 1월 2일 만기출옥>으로 적혀있다. 뿐만 아니라 호적 이름은 유관순(柳冠順)으로 수형자 기록과 다르다. 따라서 근거라고 내어놓는 ①다른 사진의 키는 169.7cm라고 보기 어렵고 ②당시 처녀는 쪽머리를 하지 않았으며 ③학교 역시 이화학당이 아니며 ④만기출옥을 했다 등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 연구자(박근창)가 여러 국가기관에 공문으로 질의해도 명확한 답변이 없다.

따라서 우리 홍성은 당시 식민제국주의에 비폭력으로 맞섰던 만해의 사상, 철학 등을 새롭게 연구하고 선양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 3·1절, 만해사당에는 지난해 7월 29일 탄신 다례제에서 이용록 홍성군수님, 이선균 홍성군의회 의장님과 약속한 홍성군 이름의 꽃바구니가 올라갈까 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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