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자원으로서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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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으로서의 사투리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0.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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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4일 북측 ‘조선불교도련맹’이 문건을 보내왔다. 당시는 남북교류가 활발했었고 필자는 불교평화연대 사무총장으로서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그때 남북공동으로 추진된 사업 중 하나가 임진왜란 시 승군의 총본부였던 평양 순안 법흥사와 충남 홍성 석불사를 남북공동사찰로 지정,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그 사업이 성공했다면 평양성 탈환으로 반전의 단초를 마련했던 조선승군의 호국애민과 홍성의 독립운동이 하나로 어우러져 통일에 중대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본다. 다시금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반드시 추진할 사안이다.

이때 만난 북측 조선불교도련맹 차금철 서기장은 회의가 끝나고 만찬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통역 없이)이렇게 말이 통한다는 것은 혈맥이 서로 통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물론 화기애애했던 회의 분위기도 이어졌지만 정서와 감정이 공유되는 말의 힘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없는 미묘한 친근감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감정을 지난 9월 8일 ‘그리운 내 고향’이라는 주제로 열린 장사익 선생의 공연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 음악을 바탕으로 판소리 기법이 가미되고 양악이 보조를 이루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 노랫말과 어투 특히 사설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홍성사투리가 깊이 녹아 있었다.

2부를 시작하며, 내빈소개와 함께 반가움을 전하는 인사말, 오셨슈! 뭔일이랴~! 멀리서 뭣하러 왔데유~, 핵꾜 어디 다녔슈! 혹시 광천중핵꾜 나왔슈! 우리 후배님들 오셨슈~ 에두르는 충청도식 표현에 익숙지 않은 나는 함께 웃으면서도 이성적 판단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엄마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란 고향사람들은 그야말로 혈맥이 통하듯 거침없이 몸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날의 분위기가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 마곡사 동네가 고향으로 중앙승가대학 총장이셨던 종범 스님은 “충청도 말은 생각을 깊게 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려 깊은 언어로서 불교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20여 년 가깝게 살아보니 동감이 간다. 발목을 다쳐 조기축구에 못 나온다는 친구와의 통화에서 “알았으니께 밥 많이 먹고 내일 아침 운동장에서 만나” 여기에 더 기막힌 것은 상대의 대답이다. “알았어! 걱정하지마 내일 봐”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대화인가? 이 말을 표준어로 번역하면 ①다쳐서 많이 불편하겠구나 ②치료를 잘해라 ③빨리 회복해서 함께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①걱정해줘서 고마워 ②너의 바람대로 잘 치료해서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 생각하면 할수록 부뚜막 무쇠가마솥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숭늉 맛 같은 속내 깊은 대화가 아닌가!

TV 연속극이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집어삼킨 덕분에 동네 구석구석에 얽히고설킨 전설과 이야기는 사라졌고, 넘쳐나는 SNS의 정보홍수 속에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아야 하는 삶의 지혜는 ‘꼰대’라는 단어에 사장됐다. 이뿐만 아니라 강과 산을 뚫고 가로지르는 훤히 뚫린 도로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경계와 구분을 없애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삶의 지혜는 단절되고 지역의 특성은 사라졌으며 상업주의가 가공한 정보들에 세뇌된 일상은 막대한 소비만 일어날 뿐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문화의 정체성에 해당하는 말과 함께 지역의 정서가 소멸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문화가 획일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년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사투리대회가 열리고 보전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이와 같은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리랑은 평지에서는 경쾌하여 빠르고, 산악에서는 느리고 구성지며,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에 속이 터진 밀양아리랑은 “날 좀 보소”라며 구애 아닌 구애를 한다. 이처럼 자연과 정서를 담아 그 지역 사투리 억양으로 불러진다. 그래서 사투리는 결코 촌스러운 말이 아니다. 크게 보면 반드시 지켜내어야 할 문화유산이요, 문학을 살찌우는 자산이며, 작게는 지역의 정서를 담아내고 동질감으로써 하나를 이루게 하는 화합의 매개체이다. 따라서 사투리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가꾸고 더욱 빛내줄 소중한 문화의 바탕이 된다.

무엇이든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개식용 금지법’이 통과되면 (외지 사람들의 입장에서) 심리학논문 한편이 될 만한 “개 혀?”라는 물음에 “혀”, “못 혀”, “안 혀”라는 각각의 대답에 담긴 의미심장한 소통방식은 이야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살펴보면 지역문화 전반에 나타난다. 

우리는 어느 날부터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우리 것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서양문화를 베끼는데 급급하고 외래어를 따라가는 문화종속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이 얼마나 초라하고 무지한 일인가.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홍성의 문화를 알리는 문화관광해설사를 시작으로 축제 운영자(특히 사회자) 축제 참여 음식점들은 사투리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택시기사 등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사람들부터 사투리를 사용해 관광에 재미를 더하자는 것이다.

바쁜 일로 급하게 가야 하는데 신호가 바뀌어도 앞차가 출발하지 않자 빵빵거리며 짜증을 내는 운전자에게 옆에 계시던 어르신이 “색깔이 마음에 안 드는가 보지”하신다. 이 말 한마디의 여유는 웃음이 되고 자연스레 안전운행을 유도한다. 이러한 멋이 홍성의 또 다른 맛이 되길 기대해 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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