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 흙을 살리는 농법에 흠뻑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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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농부, 흙을 살리는 농법에 흠뻑 빠지다
  • 박승원 기자
  • 승인 2023.12.17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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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오와린농장 대표

학교 실습 교육 과정 속에 농사일 관심 가져
농작물 키우면서 흘린 땀의 소중한 가치 배워
농작물을 수확해 수도권에 90% 이상 직거래로

 

홍동면 팔괘리 사는 ‘오와린농장’ 이재영 대표는 2남 1녀 막내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교직을 내려놓고 귀농을 준비하시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 밑에서 논과 밭을 배경 삼아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부가 꿈이었고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마을에 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8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입학한 후 다양한 실습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서 농사일에 구체적으로 배우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풀무농업학교에서 채소를 기르며 손길을 주는 만큼 자라나는 채소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쉬는 시간, 방과 후, 여가 시간에도 실습장에서 채소를 관찰하고 길렀다. 2학년이 되고 유기농가로 현장실습을 떠났다. 현장에서 배우는 농업은 학교에서 배운 농업과는 천지차이였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다. 2주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농업이 나와 이웃한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후 학교를 졸업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대학에 갈 것인가 아니면 농장으로 갈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했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농업이 아닌 직접 채소를 길러 먹고 나누며 보람을 느끼는 삶을 배우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마을에 있는 ‘채소생활’이라는 농장과 교육농업연구소에서 농사와 농업을 배웠다. 현장의 언어와 모습을 익혔고 11개월 동안 30여 가지의 채소를 기르며 땀의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직접 친환경 유기농법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어 부모님과 여러 날을 함께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화학비료·농약에서 벗어나 유기농법으로 일군 채소와 곡식이 미래의 식탁 먹거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편 요즘 사람들에게 100년 전 ‘새똥’ 때문에 국가 간 전쟁을 했다고 말하면 믿지 않을 사람도 있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에 따르면 독일의 지리학자 훔볼트가 19세기 초에 남미 대륙을 탐험하다가 현지인들이 구아노(guano, 강우량이 적은 건조지대에서 새들의 배설물이 퇴적·응고돼 화석화된 것)를 농사에 이용해 생산량을 증대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아노의 가치가 상승하자 미국과 영국 등은 태평양·대서양에 산재한 무인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일에 뛰어들었다. 또한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구아노를 채취하는 노예가 됐다. 한편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초석과 구아노로 인해 1879년에는 페루, 볼리비아, 칠레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즉 농작물에 필요한 거름을 더 효율적으로 쟁취하기 위해 태평양전쟁(1879, 새똥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 출신 독일 화학자 프리츠 야코프 하버(Fritz Jakob Haber, 1868~1934)는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인 하버법을 1909년에 개발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으며, 이 발명으로 화학비료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고, 식량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해 인류가 기아에서 벗어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 우리나라는 통일벼가 보급되자 1977년 쌀 총 수확량은 1960년대 말에 비해 30% 이상 급증했다. 한국토양비료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67년에 영남화학, 진해화학, 한국비료가 일제히 준공 가동됨으로써 비료의 수입 의존에서 국산 자급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또한 경기화학 등의 비료공장이 가동됨으로써 1968년 자급률이 102.0%에 이르고 우리나라는 비료의 자급단계를 넘어서 비료를 수출하게 됐다.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는 쌀, 밀 등주요 곡물을 많이 얻기 위해 인류는 엄청난 양의 비료를 쓰고 있다. 한국농촌사회학회에 따르면 녹색혁명은 다수확 종자 개발을 계기로 자급적·순환적 농업을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관개시설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화학 농업, 석유 의존형 농업으로 변모시켰다. 녹색혁명이 농업의 산업화를 촉발했다면 유전자조작은 기업의 농업지배를 더욱 촉진했는데 종자·농화학기업은 거대 초국적 곡물기업과 연계함으로써 종자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이르는 먹거리 체계의 전 과정을 장악함으로써 농업의 산업화를 극대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뿌린 비료가 생태계, 나아가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비료의 역설’에 직면해 있다.

이재영 대표는 “현재 1000평 밭에 수확한 후 남은 부산물을 활용해 유기질 퇴비를 만드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적어도 3년 이상 숙성된 퇴비를 활용해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흙의 지력(地力)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경운 농법에 관심을 갖고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밭이랑에는 톱밥 등 유기물을 넣어 땅속에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고 농작물을 수확해 수도권에 90% 이상 직거래로 소비자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아울러 올해 홍성군으로부터 ‘후계농업경영인’에 선정돼 원예(園藝, gardening)작물 특화에 적합한 농법을 적극적으로 활용·보급해 농작물의 가치를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대한민국 식탁 문화 발전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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