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에 관한 꿈
상태바
더 나은 삶에 관한 꿈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1.04 08:3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극의 매서운 추위가 지배한 대지는 꽝꽝 얼어붙었고, 먹이를 찾아 이동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야생동물들은 힘든 시절을 보내야 할 것이다. 새들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는 아직 얼어 있거나 쌓여 있던 눈가루를 바람에 떨구어 낸다. 그래도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 노루, 곤줄박이, 박새, 직박구리, 멧비둘기는 먹이를 찾아 이동하거나 비상할 것이다. 

갑진년에 처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기 위해 오르는 언덕은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를 헤치며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맞이하려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씁쓸했던 어떤 일은 잊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려는 것은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과 다른 내일이 오리라는 희망이 없으면 일상을 살아낼 에너지도 고갈돼 있음이 분명하다. 희망은 미래에서 무이자로 마음껏 빌려오는 거래다. 그러나 가능하지도 않은 계획을 무작정 세우면 작심삼일이 되기 쉽고, 삶은 일그러져 더욱 궁핍해질 수 있다. 행복하지 못했던 일들은 잊고 희망찬 계획을 세우는 일이 이때쯤 꼭 필요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송(送)은 시집가는 신부의 후행꾼들이 두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을 상형화한 것이다. 보낸다는 것은 혼사를 치를 사람이 정성을 다해 사돈집에 물건을 보낸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영(迎)은 우러러 본다라는 앙(仰)을 근간으로 한다.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정성을 다해 과거로 떠나보내야 했을 무엇을 보내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은, 과거가 현재에 병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을 경우 충분한 애도를 바치지 못했을 때,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과거는 내 옆에 유령처럼 떠돌 것이다. 

마음을 정리해 떠나보내야 할 것을 떠나보내지 못해 주체를 공격하는 마음 상태를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우울증으로 봤다. 우울증은 애착 대상에 대한 애도의 실패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햄릿 왕은 새벽 안개 속에 나타나 아들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고 말을 건넨다. 아들 햄릿에게 유령이 보이는 것은, 급히 죽은 아버지를 그의 마음속에서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아아 남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고 읊었다. 님은 민족, 나라, 연인, 절대자 등이 될 수 있다. 이 님이 현실적으로 떠나갔지만, 마음속에서 보내지 못한 주인공의 마음속엔 님이 한(恨)으로 남거나 그리움으로 남는다. 한용운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恨)이라는 응어리를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한이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기보다는 화병이나 우울증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게 남은 나는, 송구영신하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본다. 남의 탓이 아니라 내 얼굴에 흠은 없는지 바라보면서 내 거울을 잘 닦아야겠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남의 한이 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말기의 학자였던 최치원은 그가 지은 한시 ‘고의(古意)’에서 ‘원마심경간(願磨心鏡看: 원컨데 마음 거울 닦고서 보게나)’이라는 구절을 남겼다. 남 탓하지 말고 내 마음을 잘 닦으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새해에는 더욱더 창조적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창조적 삶은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시작된다. 창조적 삶은 감각의 쇄신이 필요하고, 감각의 쇄신은 사고의 쇄신, 언어의 쇄신을 불러올 것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어린아이처럼 경탄하며 사는 삶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루틴한 삶에 깃들어 있지 않다. 행복은 저질의 언어로 삿대질하며 상대방을 비방하는 삼류정치판, 저잣거리의 난장판에서도 찾기 어렵다. 

새해에는 남들과 어울려 사는 삶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겠다. ‘히키코모리’처럼 남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살아가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지금은 통신수단의 발달로 오히려 외로운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녀는 전 세계 사람들이 외롭고, 단절됐으며, 소외돼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은 개인의 건강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위기까지도 가져온다고 분석한다. 외로움은 분열을 조장하고 정치적 극단주의를 부채질한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산속에서 혼자 사는 것이 뱃속 편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보살필 때 행복은 다가온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새해를 맞이해 무엇을 떠나보내고 무슨 계획을 세우셨나요? 멋진 계획을 짜고, 미소를 지으며 최선을 다해보리라는 다짐을 했다면 삶에 대한 희망이 충만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희망이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희망이 있는 자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멋진 꿈을 꾼다.


김상구 <전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배지혜 2024-01-05 10:15:47
희망은 미래에서 무이자로 마음껏 빌려오는 거래라는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4년도 힘차게 살아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