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과 마음길이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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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과 마음길이 닿다
  • 한학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3.21 08: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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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복잡하고 치열한 생활 환경에서 산다. 삶의 숨겨진 기쁨으로 향하는 첫걸음은 나날이다. 사람은 중대한 선택 앞에서 나름의 해법을 쓴다. 냉혹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킬 무기는 무엇일까. 평온한 세상은 전쟁이나 분쟁, 갈등이 없고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일컫는다. 이제껏 우리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비둘기를 꼽았다. 성경에서도 비둘기는 큰 재난이 끝났음을 알리는 반가운 새로 기록했다. 전쟁터에서는 평화의 새였다. 세계대전 당시, 전쟁포로가 비둘기를 이용해 적국의 군사정보를 자국에 전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 비둘기의 공을 기리고 평화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 이후로도 인간과 비둘기의 공생관계는 큰 탈이 없어 보였다.

현대인이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해서 정보까지 공유하는 일은 이제 예사롭다. 비둘기 배설물은 강한 산성으로 건축물이나 교량을 부식시킨다. 다양한 먹이를 주워 먹기 때문에 전염병을 옮길 가능성도 크다. 사람들이 비둘기가 아무 데나 배설물을 흘리는 분별없는 행태를 볼썽사납게 느낀 지 오래다. 비둘기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도리어 피해 다닌다. 사람은 비둘기를 유해 동물로 여기는 것이다. 바야흐로 비둘기 수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서대문독립공원 산책길에 나섰다. 봄볕이 간지럽게 내려앉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랑비를 뿌린다. 장마철에 소낙비가 쏟아지다 그치는 모양과 완연히 다름이 있어 보이니 온순한 봄비가 맞다. 공원광장 가운데에 독립문이 서 있다. 주변을 감상하는 사람이 다문다문하다. 독립문 앞마당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비둘기가 날아올랐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주변 고가도로 난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는 무리도 있다. 비둘기가 집단으로 내는 울음소리는 마치 소음에 가깝다. 그렇다고 한여름의 매미 소리만큼이겠는가. 

강대국에 주권을 잃고 약소국이 핍박받은 흔적은 곳곳에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에서 악행은 대부분 사필귀정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의인은 죽음을 초개와 같이 여겼다. 처음 ‘독립’이라는 표현은 고종황제 때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독립문은 조선이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난 것을 상징하기 위해 세웠다. 19세기 후반에 외세로부터 조선과 대한제국의 독립을 기념하고,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우리 민족에게 상실감과 극한의 분노를 일으킨 일제의 악행에 대한 상징성도 담고 있다. 

독립문 안 왼쪽에는 위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맨 위에 돌난간을 꾸며놓았는데 아주 멋스럽다. 홍예문의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아치이맛돌에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자두꽃 문장을 새겼다. 앞뒤로 각각 한글과 한자로 ‘문립독’, ‘門立獨’이라고 쓰고, 좌우에 태극기 문양을 넣었다. 역사를 가슴에 새긴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해야 한다. 주변에 잘 가꾸어놓은 갖가지 계절 꽃과 나무가 바람결을 따라 춤추는 모습이 역사의 숨결과 결을 같이 한다. 새와 풀벌레의 아득한 울음소리도 장단을 맞춘다. 밤이면 은하수와 덩치 큰 달빛도 어슬렁거리며 내려온다.

독립문이 봄비를 품에 안는다. 비릿한 방울이 눈물겹게 흐른다. 건축물에서 뼈아픈 역사의 아픔이며 우리 민족의 염원도 읽는다. 독립문이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바람과 숭고한 가치는 로마 개선문이나 파리 개선문에서 찾을 수 없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오류를 바로잡고, 미처 알지 못했던 향기와 숨결을 실감케 한다. 옅은 노랑 머리카락의 외국인 몇 명이 빗방울이 조롱조롱 맺힌 우산을 받치고 독립문을 둘러본다. 내가 몇 해 전 프랑스에 여행을 갔을 때, 개선문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 건축미에만 눈길을 두던 기억이 새롭다. 그들과 눈인사를 나누다가 용기를 내어 ‘우리나라에는 개선문이 없고 독립문이 있는 이유’를 그들에게 말했다. 반만년 역사의 흐름 동안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와 문화를 면면히 지켜낸 민족의 자긍심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일까. 나도 마음이 들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랐다. 일본은 철포를 사들이고 개발하는 실용의 역사를 쓴 반면, 조선은 현실에 안주하며 세월을 낚았다. 그런 판단의 후폭풍은 컸다. 선열이 남긴 메시지는 후세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역사는 아주 작은 수고가 차지게 뭉친 다발 묶음이다. 격랑의 시대를 살아내며 민족의 긍지를 세우려고 애썼던 그들의 수고를 곱새긴다. 봄비가 숨을 고르자, 주변 잡풀들 사이에서 비를 피하던 나비 몇 마리가 나풀나풀하며, 독립문 허리춤을 감쪽같이 휘감아 갈 길을 서두른다. 비둘기 무리가 공원 주변을 낮게 날고 있다. 그들의 군무가 애달프다. 서대문독립공원 한편에 봄을 성숙하게 하는 새싹이며 꽃잎이 함초롬하다. 울컥 한가슴 가득 밀고 드는 그리움이 있다. 우리 역사의 장막을 걷어내고 장엄한 뒤안길을 살핀다. 
 

한학수 <청운대 방송영화영상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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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2024-03-23 10:45:37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김승희 2024-03-21 15:07:44
교수님 너무 감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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