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64괘 차서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서예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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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64괘 차서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서예추상
  • 황찬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5.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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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화백은 70여 년의 예술의 노정에서 일반적인 예술인들이 시도할 수 없는 예술형식의 대전환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예술형식을 창출하였고, 과감한 실천적 태도로서 전세계 예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철학적 사유가 깊은 작품세계를 이끌었는데 특히 <주역 64괘 차서도>를 통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동양의 주요 경전 중 《주역》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문자로 여겨진다. 특히 고대 춘추시대 공자(公子)는 귀하게 여겨 받들었고, 중국 남송시대 주희(朱熹)는 《역경》이라 칭하며 숭상했다. 《주역》 계사전에 따르면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 혹은 伏羲氏, 夏禹氏, 文王)가 64괘로 나눴으며, 문왕이 괘에 사(辭)를 붙여 《주역》이 이뤄진 뒤에 그 아들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됐고 이에 공자가 십익을 붙였다고 한다. 주역이 처음에는 점서를 위해 만들어진 저술이 분명하나 오랜 시대를 거치면서 성인(聖人)에 의해 고도의 철학적 사색과 심오한 사상적 의미가 부여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학의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응노, 주역 64괘 차서도-지택림, 33x24cm, 한지에 먹, 1974.
이응노, 주역 64괘 차서도-지택림, 33x24cm, 한지에 먹, 1974.

주역의 괘가 의미를 갖추게 된 연유에서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위로는 상(象)을 하늘에서 우러르고, 아래로는 법을 땅에서 살폈으며 새와 짐승의 모양, 초목의 상태를 관찰함에,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함에, 이로써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비기었다”는 해석이 있다. 이 지점에서 이응노가 서예추상을 통해 64괘를 자신만의 의미로 재해석해 봤음을 알 수 있으며 문자추상의 작품세계를 여는데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참고도의 지택림(地澤臨) 괘는 상부의 지괘와 하부의 태괘가 합해 구성됐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 대인 관계의 중요성, 윤리적 가치와 도덕성, 변화에의 적응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이응노의 지택림 괘를 변용한 서체추상화를 살며보면 臨(임할 임자)을 해제해 왼부수 ‘臣(신하 신)’에서 자연을 상징화한 형상을, 오른부수 상단의 ‘人(사람 인)’ 부수에서 몸을 굽힌 사람의 형상을, 중앙에는 ‘品(품)’을 의미하는 형상을 변형시켜 배치시켰다. 주역의 괘의 해석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이응노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응노는 “서예의 세계는 추상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설정, 하얀 평면에 쓴 먹의 형태와 여백의 관계, 그것은 현대 회화가 추구하는 조형의 기본이지요. 한자 그 자체가 동양의 추상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언급했다. 

미술평론가 안영길은 “주역 64괘 차서도와 군상 시리즈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섬세한 호흡의 율동과 거친 생명력의 약동이 한데 어우러지는 고암 이응노의 이러한 화면구성은 시각을 통한 감각의 즐거움을 부여함과 동시에 작가가 이야기하는 심오한 달관의 철학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고 차서도에 대해 평론한 바 있다. 

황찬연 <DTC아트센터 예술감독, 칼럼·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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