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충청권 50대 표심, 왜 박근혜를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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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충청권 50대 표심, 왜 박근혜를 선택했을까?
  • 대선특별취재팀
  • 승인 2012.12.3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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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선에서 캐스팅보드 역할을 해온 충청 표심이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전체 유권자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충청권에서 박근혜 후보는 28만여 표차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앞섰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을 지역으로 따지자면 경기도와 인천, 충청도이며, 세대로 따지자면 50대로 볼 수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50대의 투표율은 89.9%였는데, 62.5%가 박근혜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인구 구성에서도 50대는 2002년 12.9%에서 2012년 19.2%로 7%나 늘었다. 박근혜 후보는 50대에서 문재인 후보에 비해 250만 표를 더 얻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흔히 삶의 부담감과 고통이 가장 심한 50대는 '베이비붐 세대'(1954~63년생)로 불리며, 보통 대학생이나 결혼할 자녀가 있고, 정년을 맞게 되거나 정년을 한 세대들이다. 결국 경제와 안보문제에 민감한 50대에게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북방한계선(NLL)문제가 현안이 됐고, 결국 이정희가 '박근혜는 안 된다'며 안보불안을 자극해 표심이 쏠린 셈이다. 문재인 후보가 2030세대에서 65%의 지지를 받았지만 박근혜 후보 또한 33%의 지지를 받은 점도 주목할 일이다. 특히 박근혜 캠프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제시했는데, 여기서 '준비된'이라는 구호가 갑작스럽게 대선 후보로 나선 안철수, 문재인과 비교해 준비된 인물이라는 것을 홍보하는데 이용됐다면,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실제로 여성(주부)층에서 압도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로 나타났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매몰되며,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여기에 이정희와 남성 두 명이 여성 한 명에 도전하는 형국으로 인식되면서 '보수의 총결집과 인물 경쟁력'이 핵심 전략이 됐고, 보수의 위기의식이 보수층의 광범한 결집을 가져왔다. 이것이 결정적 승인 중 하나다.


■ 박근혜, 50대에서 250만표 앞서, 충청에서 117만표 득표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50대에서 문재인 후보보다 250만 표를 더 득표했고, 충청권에서만 117만여 표를 얻었다. 박 후보는 대전에서(유권자 118만여 명) 50%의 득표율로 49.7%를 얻은 문 후보와 팽팽한 양상을 보인 반면 충남과 세종, 충북에서 표차를 크게 벌렸다. 충남에서(유권자 160만여 명) 56.4%를 얻어 43%를 얻은 문 후보를 13.4%p (16만여 표) 앞섰고, 전체유권자의 3%(120만 명)를 차지하는 충북에서는 투표율 대비 56.2%를 얻어 12만 표 가깝게 차이를 벌렸다. 이는 대선사상 충청권 최고 득표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는 93만5604표(42.3%)를 얻었고, DJP 공조로 당선된 김대중 후보 108만6252표(43.9%), 노무현 후보 109만200표(52.2%)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는 84만9200표(37.1%)를 득표했다.

박근혜 후보의 승리는 일찍부터 충청에서 닦아 놓은 우호적 분위기에 두터운 보수층 결집으로 대세론을 굳힌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는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있는 충북, "대전은요?" 발언으로 호감을 얻고 있던 대전, 전형적인 농업도인 충남에서 '새마을운동'으로 집약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내세워 "충청은 어머니의 고향이자, 제 마음의 고향"이라며 충청의 딸임을 강조한 점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MB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으로 이해찬 민주통합당 후보를 당선시켰던 세종시에서도 박 후보 지지세(2800표 차)가 강했다. 박 후보가 MB정부와 맞서 세종시 수정안을 막은 일등공신이라는 인식이 배어 있는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이회창 전 대표를 비롯한 선진통일당과 합당 추진 등 보수층 결집이 일정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대통령선거, 충청에서도 이긴 후보가 당선 '입증'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뒤 치러졌던 다섯 번의 대선에서 네 번을 충청권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과로 나타났다. 1990년 2월 김영삼(YS)과 김종필(JP)이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출범시키자, 1992년 14대 대선에서 충청인의 표는 YS에게로 향했고, 그 결과 YS는 충청도에서 DJ보다 20만6873표를 더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영남을 등에 업은 이회창 후보와 호남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DJ(김대중)가 격돌했고, DJ와 JP의 'DJP연합'이 성공하자 충청인은 DJ에게 표를 몰아줘 39만557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DJ가 승리, 국민의 정부 설립 1등 공신이 됐다. DJP연합을 통해 충청의 지지를 받은 DJ가 충청권에서 이 후보 보다 더 득표한 40만8319표가 승패를 갈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충청인이 선택한 후보가 청와대를 차지하는 일은 '탈 JP' 경향을 보인 2002년에도 계속됐다.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선공약의 최대 야심작인 '행정수도 이전'을 제시한 것은 그만큼 충청의 중요성에 대한 반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전국적으로 57만980표 차로 따돌렸는데, 충청권에서 노무현 후보가 더 획득한 25만6286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의 노태우, 부산·경남의 YS, 호남의 DJ, 충청의 JP가 등장해 지역바람이 거셌던 1987년 13대 대선에서는 충청의 맹주였던 JP에게 표를 몰아줬고, JP는 자신의 전국 총득표의 43%인 79만3670표를 충청도에서 얻어 4위를 기록했다. 17대에선 '대세론'을 형성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1위를 안겨줬다. 결과적으로 이번 18대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결정적 요인으로는 '충청은 어머니의 고향이자, 제 마음의 고향'이라고 강조한 대전·세종·충남·충북의 표심이 박근혜 후보에게 몰리며, 28만여표 차를 보여 충청표심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는 분석이다.


■ 박근혜,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승부의 향방 갈라
이번 대선에서의 지역별 판세를 보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박근혜 후보가 선전한 것이 승부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갈랐다는 분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인명부에 따르면, 전국 4000만 유권자 가운데 약 2000만 명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서울 800만, 인천 200만, 경기 1000만, 부산·울산·경남(PK) 600만, 대구·경북(TK) 400만, 광주·전남·전북(호남) 400만, 대전·세종·충남·충북(충청)이 400만, 강원과 제주를 합해 100만 명 정도다. 이 가운데 TK와 호남은 인구도 비슷하고 극단적인 표 쏠림 현상도 거의 정확히 대칭돼, 변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여야의 득표 전략도 여당 우세 지역인 PK와 충청에서 얼마나 야권이 격차를 좁히느냐, 반대로 야권이 대체로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던 수도권에서 얼마나 격차를 벌이느냐가 초점이었다. 그러나 야권은 PK와 충청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득표를 하지 못한 반면, 박근혜 후보는 수도권에서 격차를 좁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승부를 뒤집어 버렸다. 수도권 3개 지역 가운데 문재인 후보가 앞선 곳은 서울(박 48.2%, 문 51.4%)이 유일했다. 박근혜 후보는 인천에서 51.6%대 48.0%, 경기에서 50.4%대 49.2%로 문 후보를 앞질렀다.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는 무려 700만명에 이르는 충청출신 출향인이 있다는 점도 표심을 좌우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결국 충청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28만여 표차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앞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치쇄신과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박근혜 후보를 넘어서지 못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오히려 선거일을 앞두고 '세종시 수정안'을 앞장서 추진했던 MB정부의 충청출신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손을 잡은 것은 독약이었다는 평가다. 세종시의 원조를 스스로 부정한 꼴이 됐으며, 충청인의 정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지적이다. 문 후보가 세종시 원안을 파기하고 수정안을 밀어붙이려다 충청인의 거센 저항을 받아 실패했던 매향노 정 전 국무총리와 손을 잡은 사건은 충청인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는 공세를 취할 문 후보가 오히려 새누리당의 공세에 방어하는 수세적 입장에 몰린 셈이다. 이와 더불어 문 후보가 충청권에서 박 후보를 압도할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패인으로 꼽힌다. 문 후보는 이렇다 할 충청권 이슈가 없는 가운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부지매입비 전액 국비지원, 충남도청 이전부지 활용 국비지원, 세종시에 청와대 제2집무실과 국회분원 설치, 충남도청내포신도시 건설비용 전액 국비지원, 서해안 철도건설 등을 공약했다. 하지만 박 후보의 공약과 대동소이해 차별성이 없는 데다 중원을 이끌 새로운 비전으로 보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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