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레만스레튼(allemansratten). 스웨덴어로 ‘방랑할 권리’를 말한다. 모든 사람이 자연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문화적 개념으로 ‘모두의 권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북유럽 노르딕 국가인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도 유사한 권리가 존재하는데, 모든 사람은 산, 숲, 호수, 해안 등 자연을 자유롭게 이용(야영, 캠핑)할 수 있으며 사유지라도 일정한 규정을 지키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자연을 통해 건강을 증진 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며 광활한 자연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원리를 몸소 체득하게 하는 그들만의 전통문화가 삶에 담겨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에 수반되는 책임 또한 강조되고 있는데,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야생동물을 방해하지 않으며,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타인을 방해하지 않음은 물론, 관련 법률과 규정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얼마 전 우리 지역의 명산에서 캠핑족들이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야영을 한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인근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불법 야영 및 취사 행위가 수시로 일어난다고 하니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주말이면 100대 명산에 속하는 오서산과 용봉산, 월산에 야영 배낭을 매고 오르는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잘 만들어진 정상의 데크에서 호연지기를 느끼며 아름다운 서해를 감상하고 일찍 하산하면 좋으련만, 해지기 전부터 텐트를 쳐가며 야단법석을 떨기 일쑤다. 이들은 같이 온 동료, 연인들과 함께 떠들어 가며 데크 바닥에 나사못(피스)을 힘차게 박아댄다.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튼튼하게 고정하려면 최소한 큰 못 십여 개가 필요한데 이것이 전부 데크의 틈이나 바닥 면에 꼽힌다. 일부 악질들은 데크의 나사못을 풀어내고 그 자리에 더 큰 못을 박는 몰상식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의 불법 야영으로 인해 텐트 주변에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은 각종 음식물 쓰레기와 썩지 않는 비닐, 플라스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매년 수십 회에 걸쳐 우리 지역 명산을 돌며 환경정화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한국산악회 충남서부지부와 함께 현장을 다녀본 결과, 야영 흔적이 있는 데크 밑과 주변 나무 밑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음식물 찌꺼기와 술병, 물병, 물티슈 등의 쓰레기가 수거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로 인해 주변 산림의 훼손은 물론 극심한 악취까지 발생하고 고양이, 염소 같은 야생동물의 출현이 빈번해지기도 한다.
불법 야영한 이들은 아침이 되면 커피와 아침을 해 먹느라 부산을 떤다. 해가 뜬지 오래돼도 이른 등산객이 곁에 다가와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무슨 낭만인 양 여기며, 이를 딱한 모습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부러움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그리고 곧바로 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다음 비박은 어디에서’ 따위의 글을 싣는다.
비박(Bivouac, Biwak)은 원래 주변을 경계하며 몸을 숨기고 밤을 지새는 매복의 개념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등산 분야에 이 단어를 적용해 ‘텐트를 사용하지 않는 일체의 노영’을 뜻하는 말로 정리됐다. 그럼에도 텐트를 치며 비박을 한다고 ‘풍신’을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슷한 말로 백패킹(backpacking)이 있는데 이는 등짐(야영장비)을 갖추고 여행을 떠나는 레포츠를 통칭하는 말이다. 캠핑(camping)은 야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연을 즐기는 일종의 레저활동으로, 산과 들, 바다 등지에서 많이 행해진다.
한국관광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캠핑 인구는 700만 명에 이르고 전국의 야영장은 3591개(2023년 12월 기준)가 마련돼 있다고 한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숲길 체험을 하는 인구는 전체 성인 남녀의 78%인 약 323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국토와 자연에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의 자연과 산림을 더욱 아끼고 보살피는 일은 고사하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골라 하며 자연에 피해를 주는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자연은 우리에게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 등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풍경과 여가 활동을 제공하며, 심신의 치유(힐링), 건전한 정신건강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연은 우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왔다가 ‘돌아가시는 곳’이기에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산림 내 야영 및 취사 행위 절대 금지, 산림보호법 제57조 제3항 제2호에 의거 과태료 부과’라고 쓰여있는 현수막 앞에서 떳떳이 텐트 치고 주무시는 개념 없는 분들이여, 당신은 물론 산에서 야영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법을 지켜라. 삼겹살과 낭만은 자신 소유의 산속이나 부디 합법적인 캠핑장에서 찾으시길 권한다. 그렇지 않은 당신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손가락질과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고지서뿐이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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