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레인맨’은 배우 더스틴 호프먼이 천재적인 암기 능력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을 연기해 1989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레이먼드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진 킴 픽을 참고했다고 한다.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킴 픽은 만권이 넘는 많은 책의 내용을 대부분 암기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도 혼자서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서번트’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소통 능력이 낮으며 반복적인 행동 등을 보이는 여러 뇌 기능 장애를 갖고 있으나 기억, 암산, 퍼즐이나 음악적인 부분 등 특정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증후군이다.
최근 필자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연수에 참가했다.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고, 그중에는 장애인의 소통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드는 구절이 있었다. 교재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인용하면, “자폐성 장애인의 가장 큰 특성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이 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화할 때 같은 말만 되풀이 하거나 다른 사람의 질문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자폐인들도 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심할 경우 괴성을 지르거나 자해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자폐증의 고유한 특성이라기보다 자폐인의 의사소통(가령, 불만의 표시)의 한 수단일 수 있다.”
괴성이나 자해가 자폐인이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수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 방향에서만 장애인을 본 것 같았다.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자폐인의 언행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한 정혜신이 주장한 적정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저서 《당신이 옳다》의 내용을 봤다. 사람의 말 뒤에 숨겨진 정서를 언급했다.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때, “당신이 옳다. 네가 옳다”라고 한다면 즉,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불안을 떨치고 합리적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서로 주파수가 맞게 된다. 공감의 위력을 알게 되는 구절이다.
청소년기 자녀를 돌보는 것은 참 어렵고도 긴 여정이다. 가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고 질문을 받기도 한다. 가정마다 환경이 다르니 어떤 특정한 방법이 좋다고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보호자는 상담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론과 임상수련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기초단계 없이 기법을 배우기는 어렵지만, 《당신이 옳다》의 저자인 정혜신의 방법을 쓰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청소년이 “죽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듣고 먼저 흥분하면 안 된다. 차분한 마음을 갖고 대화해야 한다. “죽고 싶을 만큼 어려운 일이 있나 보구나”, “죽고 싶은 만큼 힘든 일이 있었구나”, “죽고 싶을 만큼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었구나”라고 물어봐 줘야 한다.
어른들도 스스로 생각해보자. 우리도 살면서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죽고 싶을 때가 있었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런 청소년의 마음을 비난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주면 다시 살아갈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청소년의 언행이 삐딱하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고유한 의사소통 방법일 수 있다. 또는 의사소통 방법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내는 모습일 수 있다. 청소년을 한가지 관점에서만 보고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 눈앞에 있는 청소년이 보여주는 언행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보고, 그 언행 뒤에 숨겨진 정서에 공감해 보자.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그 강도만큼 그늘도 생기는 것처럼.
변승기<전 교사,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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