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회장 맡아 마을일 '척척' 대한민국 억척 아줌마
상태바
부녀회장 맡아 마을일 '척척' 대한민국 억척 아줌마
  • 최선경 기자
  • 승인 2013.01.11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농어촌발전상 수상한 올란데스카 멜로디엠 씨

여성의 힘,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의 시작

여성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는 여성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그녀는 잘 웃었다. 소리 내어 환하게 웃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유쾌해졌다. 처음엔 '무슨 인터뷰'냐며 손사래를 치더니, 끝도 없는 수다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보냈다. 올란데스카 멜로디엠(37) 씨는 참 정직하고 밝고 소박한 사람이었다. 장곡면 신풍리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올란데스카 멜로디엠 씨는 지난달 20일 제20회 충청남도 농어촌발전상을 수상했다. 충청남도 농어촌발전상은 농어업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숨은 일꾼을 발굴, 시상함으로써 농어업인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지난 1994년부터 시상해 온 권위 있는 상이다.
멜로디엠 씨는 1997년 필리핀에서 이주한 여성으로 남편 최종엽(53) 씨와 4남매 윤미(15), 윤정(14), 현수(12), 윤진(5)이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그녀는 지난 2009년부터 신풍리 3구 부녀회장직을 맡아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며 여성농업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홍성군에서는 최초의 결혼이주여성 부녀회장이기도 하다. "홍성에 먼저 시집 온 고향 언니의 소개로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어요. 6남매의 장녀로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죠. 낮에는 쇼핑몰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을 다녔어요. 컴퓨터관련 학과를 전공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네요"라며 쾌활하게 웃었다.

멜로디엠 씨는 한국말을 진짜 잘했다. 웬만한 유행어, 속어, 사투리 정도는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옆집에 살던 다섯 살 꼬마랑 하루 종일 놀면서 말을 배웠다는 그녀는 그 당시에도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놀러 올 정도로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어머니와 의사소통이 안 돼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갈등도 겪었어요. 남편은 8남매 중 일곱 번째인데 형님들이 음식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고 애들도 돌봐줬어요. 도움을 많이 받고 고맙긴 하지만 시댁 식구들은 여전히 어려워요"라고 슬쩍 털어놓았다.


■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아픈 아들 사연 소개…받은 사랑 봉사로 갚아
늘 웃고만 살 것 같은 그녀에게도 아픔이 있다. 셋째 현수가 태어날 때부터 신장이 좋지 않았다. 큰 수술을 2번이나 해야 했다. 배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달았고 기저귀를 차고 산 지 5년이 지났다. 그러다 다행히 재작년에 배의 구멍을 다 막았다. 방광을 넓히는 수술을 했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침, 저녁 호수를 넣어서 소변을 빼내고 요즘도 1주일에 한 번씩 서울대학병원에 전기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이제는 양쪽 신장의 기능이 30% 정도로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고마운 일이다.

"지난 2008년 KBS '사랑의 리퀘스트'란 프로그램에 현수의 사연이 소개됐어요. 전국의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분들로부터 200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받아 수술비를 충당했어요.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수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현수도 저도 더 열심히, 더 건강하게, 더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는 2009년 마을부녀회장이 됐다. 성격이 활발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한 그녀를 마을 사람들이 적극 밀었다. 당시 새마을지도자였던 남편이 도와준다고 해서 덜컥 부녀회장직을 맡게 됐다. 남편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묵묵히 동네일을 도왔다.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척척 앞장서 해내는 그녀를 두고 마을 사람들 칭찬이 자자했다.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으로는 홍성에서 두 번째인 그녀는 얼마 전 동네 노총각 중매를 위해 필리핀을 다녀왔다. 사촌 여동생과 맞선을 보게 했는데 잘 될 것 같다고 귀띔한다. "중매를 잘못하면 뺨이 석 대, 잘하면 술이 석 잔이라는데 아마도 술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성에서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선배로서 책임감이 자꾸 커지네요. 가끔 결혼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힘들고 외롭게 지내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가 불고기와 매운탕이라고 자랑하는 그녀는 김장은 물론 손수 고추장과 된장까지 담가 먹는다. 어쭙잖은 대한민국 주부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했다. 부부싸움을 하는지 묻자 그녀는 가끔 남편이 섭섭하게 대하면 '늙어서 보자'고 엄포를 놓는단다. 그러면 남편이 늙어서 보지 말고 지금 보자고 농담을 건넨다는 부부.

"동네 아줌마들이 알려줬어요. 남자들 나이 들면 힘없어지고 기운 빠진다고요. 그때 가면 여자들 더 힘 세진다고 지금은 조금 참으라고 하시던데요?" 결혼 15년차 주부답게 부부관계도 베테랑 수준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남편 흉도 보고, 시댁 식구 뒷담화도 하고, 내년 농사일에 아이들 교육까지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리 가족 새해 소망은 무조건 건강이에요. 가족들 모두 행복하게 자신들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부끄럽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았으니 앞으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장곡면 송년의 밤 행사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며 서둘러 일어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