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잎에서 피어난 사람들, 첫번 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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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잎에서 피어난 사람들, 첫번 째 이야기
  • 황찬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11.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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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황찬연<br></strong>DTC아트센터 예술감독<br>칼럼·독자위원
황찬연
DTC아트센터 예술감독
칼럼·독자위원

고암 이응노 화백은 68여 년 화업(1922~1989)을 이끌어가며 자신의 예술 시대를 6개 기간으로 나눴다. 20대에는 한국의 전통 동양화와 서예적 기법을 기초로 모방을 주로 했던 시기였고, 30대에는 자연 물체를 사실주의적으로 탐구한 시대였으며, 40대는 반추상적인 표현 즉 자연 사실에 대한 사의적(思意的) 표현 시대였다. 

50대는 유럽에서 추상화를 시작한 사의적 추상 시기, 60대는 서예적 추상시기라고 구분했다.(전세계 예술가들 중 이렇게 다양한 작품세계를 이끌어간 작가를 찾아보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응노는 자신의 작품세계의 변화과정을 “나는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썼고, 한동안 문인화를 그렸기 때문에 그 경험으로 말하면 서예의 세계가 하나의 추상화 세계로 통한다. 서예 속에 조형의 기본이 있다. 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설정, 새하얀 평면에 쓰인 먹의 형상과 여백의 흰 관계. (중략) 이것은 현대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조항의 기본이다. 때문에 나의 경우, 추상화로의 이행은 붓글씨를 썼기 때문에 거기서의 귀결인 셈이다. 그로써 나에게는 새로운 구성적 이미지의 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예술적 사유와 작품 형식의 변천과정에 대한 그의 자전적 설명의 근거로 유추해 본다면, 그가 처음 해강 김규진 선생에게 사사 받았던 문인화-대나무를 시작으로, 사의적 추상, 서예적 추상으로의 변화를 비롯 고대 문자 연구, 동양사상 연구, 인간의 몸짓 연구, 매체 연구 등 예술적 사유의 심화와 예술적 형식의 다양성 추구를 위해 수다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이응노 자신이 고백했듯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옥중시기는 열린 눈과 정신으로 자신과 마주한 시대의 모습을 직시하도록 했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의 변화과정을 대별하여 살펴보면 원효의 원융회통(圓融會通) 사상과 맞닿아 있다. 원(圓)은 거대한 순환, 융(融)은 화합, 회(會)는 모임, 통(通)은 소통을 뜻하며, 교리나 언어에 집착하지 않으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응노의 경우 크게 6단계의 작품세계의 변천과정과 그 안에 담긴 예술적 사유의 심화적 단계를 고려해 본다면 이응노가 1980년대 마지막 단계로 피워낸 <군상>시리즈는 그의 예술적 사유의 총화(總和)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응노의 <군상> 작품들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반핵운동’으로 보거나 반전시위 혹은 노동운동의 광경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에서는 어떤 특정의 사건이나 사태의 주제가 드러나 있지 않으며 주제로도 명료화 돼 있지 않았고, 아울러 이응노는 파리시기(1960~1989)의 전시 작품들에는 명제(제목)를 붙이지 않았고 ‘무제-無題-Untitled’로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응노의 <군상>을 감상했었던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축제’, ‘공동체’, ‘평화’, ‘공존’, ‘연대’, ‘저항’을 읽어냈고 이응노의 예술적 사유에 깊은 감화를 받는다.

이응노는 <군상> 작품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자 “2백호의 화면에 수천 명의 군중의 움직임을 그려 넣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고 이내 공주를 연상하거나 서울의 학생데모라고 했다. 유럽 사람들은 반핵운동으로 보았지만, 양쪽 모두 나의 심정을 잘 파악해 준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설명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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