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중략…//광주여 무등산이여/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꿈이여 십자가여/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지금 우리들은 확실히/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1980년 <전남매일신문>에 5·18민중항쟁 관련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발표, 우리들의 세상과 세월에 ‘5월 광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각인된 김준태 시인의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가 197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 14번째로 출간됐다.
시집은 전형적인 농촌 전라남도 해남이 고향인 시인이 후기에서 “사람들아, 사람들아, 내가 시를 쓴다는 일은 고향을 찾아내려는 온갖 몸부림일 뿐이고, 내가 아주 고향이 돼버리는, 그리고 그대들 모두도 고향이 아주아주 돼버리자는 그런 노래와 몸부림일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을 보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70년대 이 땅의 산업화 물결에 휩쓸리어 허물어져 가는 와중에도 심지 굳건한 농촌 노동의 정서를 한껏 발아시킨 표제 시를 비롯해 ‘머슴’ ‘감꽃’ ‘호남선’ ‘들 밥’ 등 가편의 시를 가득 담고 있다.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표제 시 ‘참깨를 털면서’ 전문)
조태일 시인은 시집에 대해 발문에서 “동물적인 기백의 순발력을 지니고, 전혀 새로운 목소리와 새로운 형식으로 우리들 시 속에 참신하게 와 닿는 김준태의 시는 건방질이만큼 거센 목소리로 외쳐대는가 하면 천 리 물속 같은 고요한 서정으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준다”며 “과거의 우리 시사에서도 드물게밖에 만나지 못하는 그런 야성적인 토운은 일단 우리의 관심을 끈다”고 평했다.
1948년 해남에서 출생한 시인은 1969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칼과 흙>,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지평선에 서서>, <형제>, <밭시>,<달팽이 뿔>,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독일어 시집 <물거미의 노래> 등이 있다. 1995년 <문예중앙>에 중편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발표 후 100여 편의 액자소설을 발표했다. 산문집 <시인은 독수리처럼>, 문명비평집 <21세기말과 지역문화>, 번역서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기행집<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통일 시에 해설을 붙인<백두산아 훨훨 날아라> 등이 있다.
5·18 기념재단 이사장,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전라남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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