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폰 책쓰기코칭 아카데미 대표
칼럼·독자위원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이렇게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어른을 위한 동화《연어》가 지난 1996년 3월에 첫 출간돼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 3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읽고 또 읽어도 또 읽고 싶은 것이 시 같은 동화이기 때문이다.
안도현 시인은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믿는 이에게 바친다”라고 했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서 살다가 단풍이 곱게 물드는 9월에서 11월 사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강의 상류에서 알을 낳는 모천 회귀성 어류이다. 이런 연어의 삶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려내어, 동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한 무리의 연어 떼가 모천으로 회귀하기 위해 넓은 바다에서 강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친구 연어들은, 검푸른 바닷물을 닮지 않고 은빛 비늘을 지녀 쉽게 먹잇감으로 노출되는 은빛연어를 대열의 한복판에 있게 해 보호해 줬다. 하지만 은빛연어는 자신을 별종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의 말에 외로움을 느끼며 삶이란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힘을 내어 그래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물가로 고개를 내밀다가 불곰에게 잡힐 뻔한 것을 눈맑은연어가 구해주는데, 그 순간 과거의 의미 없던 모든 기억을 말끔히 비워내고, 비로소 신선하고 푸른 마음을 가득 품게 된다. 은빛연어가 눈맑은연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작은 돌멩이 하나. 연약한 물풀 한 가닥, 순간순간을 적시고 지나가는 시간, 전에는 하찮아 보이던 모든 것들이 소중한 보물처럼 여겨졌고, 이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둘은 서로 사랑하면서 강 입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어는 온몸으로 뛰어올라야만 폭포를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이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폭포를 뛰어오르는 그들의 존재만이 거친 물살 속을 헤쳐 번쩍거리며 공중으로 계속해서 솟아오를 뿐이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어느 틈에 폭포의 사나운 물줄기 대신 고요한 물살이 그들의 온몸을 아늑하게 감싸고 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들은 폭포를 뛰어오른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고 힘이 되면서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돼주기 때문이고,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연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돼주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친구의 배경이 되고, 집안의 배경이 되며, 이웃의 배경이 되고 국가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눈맑은연어의 입을 통해 말한다.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꿈이랄까 희망 같은 것으로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라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 쉬운 길은 길이 아니라고, 너는 말했지. 거슬러 오르는 기쁨을 알려면 주둥이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어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것을 뱃속에 있는 알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우리가 눈맑은연어가 돼 세상을 바라보면, 아직도 이 세상 곳곳에 사랑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자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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