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멘붕에서 건져준 충남농업인대표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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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멘붕에서 건져준 충남농업인대표자 모임
  • 곰이네농장 맹다혜
  • 승인 2013.03.21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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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농업인 대표자 모임 회원들

저는 홍성이 고향이 아닌, 농촌에 살아본 적도 없는, 농사도 무식하게 많이 짓는, 아주 오리지널 뜨내기 귀농인 입니다. 처음엔 농촌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만끽하고 살고자 시작한 귀농이었는데, 하다 보니 결국 농촌의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든 '생존' 하는 일이더군요.
그래서 평소에 어떻게 나름 '생존'하고 있는지 써 나가 보려고 합니다.
저는 2000년부터 귀농을 준비하기 시작해서 현재 장곡면 행정리에서 '곰이네농장'이란 농장을 운영하며,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18동이란 욕 같은 숫자의 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 애호박 등 주섬주섬 하고 있는 것들은 많은데, 여전히 여러 작물들을 경험하며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저에게 작년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해였습니다. 나름 어린나이에 시작한 귀농이고, 텃밭이나 가꾸면서 귀농했다고 폼 잡는 게 귀농이냐는 손가락질을 받기 싫어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했고, 그 뒤로 생산 기반을 늘리는데 열중해 왔습니다. 적정 규모가 되지 않으면 투잡(two job)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거든요. 농사에 전념하고 싶어서 빚내서 하우스 짓고, 그 하우스에서 번 돈 또 하우스에 투자하고, 짓다보니 욕심이 생겨 또 하우스 짓고, 5년을 끌어왔네요. 남편이 다른 일을 해서 번 돈까지 탈탈 털어 부었구요. 그래도 보조사업 받아서 짓기도 했는데 뭔 돈이 그렇게 들었냐 하시지만, 하우스 하나 지으려면 드는 돈이 장난이 아니랍니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죠.

여하튼 2012년이 되어서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한다, 잘해왔다' 생각했었는데, 작년 여름 폭우, 볼라벤, 덴빈의 영향으로 하우스가 많은 만큼 손실도 컸어요. 그러다 보니 애써 '나만 자연재해를 입었겠냐, 철저한 대비를 못한 내 실수도 있다. 알았으니 내년부터는 잘 대비하자'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이 그간의 고생이 겨우 이런 결과를 낳았냐는 실패감에 빠질 수밖에 없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슬럼프 - 멘붕의 수렁은 깊었습니다. 그냥 농담이나 하고 다녀서 티는 안 났겠지만 내가 겨우 이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게을러지고, 냉소적이 되고, 입에서 부정적인 말 밖에 안 나왔죠. 도대체 뭘 위해 여태껏 미친 듯이 달렸나, 농사지으며 조용히 행복하게 살자고 꼬시는 남편을 이 고생으로 끌고 온 건 어떻게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래도 이렇게 마음이 무너질 순 없다는 생각에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선생님의 소개로 '충남 농업 비즈니스 모델 교육'에 참여했었습니다.
농업· 농촌의 굴레를 벗어나 비즈니스의 마인드로 농가경영을 해보자는 교육이었는데요. 처음에는 무너졌던 마음을 더 무너지게 한 교육이었습니다. 기껏 하우스나 늘리면서 가락시장에 멍청하게 출하해왔던, 그러면서도 이만하면 잘났다고 생각했던 제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여러 방식으로 농가경영을 해나가시는 충남의 농업인 대표님들을 만났습니다.

그게 뭐냐고 된통 호통을 놓으시는 멘토님들을 만나다보니 너무 작아지더군요. 그래도 꿋꿋이 버텼습니다. 교육 중에 다른 농업인 대표님들과 멘토님들이 발전해가시며 하늘을 나는 동안 저는 여전히 슬럼프의 수렁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어요.
교육이 끝나고 '충남농업인대표자 모임 (CA CEO)'으로 다시 꾸려질 때 그래도 이분들에게 제가 뭔가를 해드려야 저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총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신승우 센터장님, 전북 삼농연구소 이승형 소장님, 블로그 마케팅 전문가 송영호 선생님, 소셜 마케팅 전문가 조남준 선생님과 같은 유능한 분들을 멘토님으로 모실 수 있게 됐습니다. 충남에서는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로 불리시는 농업인 대표님들과도 말을 섞을 수 있게 됐지요. 지나가다 근처라며 들르시는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조언도 듣게 됐고요.

오늘은 부여에서 그 모임을 진행했었어요. 인삼을 대나무통에 넣어서 화분으로 만들어 팔고 싶다는 대표님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이나 보완사항, 발전 방안 등을 대놓고 욕도 하고 토론도 하는 자리였습니다.
방울토마토 죽자고 따내서 돈 버는 저에게는 사뭇 먼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지금 여기 뭐 하러 꼈는지 황당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분들을 통해서 농업이, 농촌이, 땡볕에 죽자고 일하고 별 소득 없이 빚만 지는 그런 암울한 직업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이 처음엔 저를 더 괴롭혔지만, 지금은 적당한 자극이 되고 있고, 작년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포자기 안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집에 하우스는 풀이 잔뜩 한데 어딜 싸돌아 다니냐며 뒤통수가 따가울 때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하우스 풀은 제 농작물을 잡아먹을 정도가 아니면 죽자고 뽑지 않는 성격이구요, 18동 하우스를 호텔처럼 깨끗하게 만들다간 제 몸이 견뎌내질 못하고, 그러면 정신도 견뎌내질 못합니다.
그럴 바엔 이제부터는 일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더 나은 소득을 얻기 위해 고민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식량 자급률은 20%를 못 벗어나는 나라지만 많이 생산하면 왜 그렇게 많이 생산했냐고 욕먹는 게 지금 농업인입니다. 그런 누가 좋아하지도 않는 미련한 짓은 이제 그만 두어야할 것 같습니다.
일에 찌들어서 앞으로 벌고 뒤로 까지는 지도 모르는 농사는 잘 가려내고, 일을 즐기면서 영악하게 돈 버는 농업인이 되고 싶습니다. 좀 늦었지만 간신히 슬럼프에서 벗어난 만큼 더 열심히 다시 뛰자는 마음을 먹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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