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폰 책쓰기코칭 아카데미 대표
칼럼·독자위원
50여 년 동안 시를 쓰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詩)가 있는 산문집이 2024년 1월 출간됐다. 68편의 시와 그 시에 얽힌 이야기로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이다. 책 제목은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말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서 인용한 것으로, 사랑과 고통을 동의어로 보고 있다. 즉, 사랑 속에 고통이 있고 고통 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조각조각 난 색색의 유리를 붙여 만든 스테인드글라스가 햇살이 비칠 때 그토록 아름다운 색채의 문양을 내듯이, 아름다운 인생 또한 조각조각의 고통이 모여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인생이라는 건축물의 골조가 고통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생에는 왜 고통이 따를까? 겸손해지라는 것이다. 즉 삶의 자세를 낮춰 살라는 것이다. 태풍이 불면 연약한 풀잎도 자신의 몸을 낮추듯이, 인생 또한 태풍이 불어오면 삶의 자세를 낮춰 견뎌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라는 것이다. 보리도 차가운 눈 속에서 겨울을 견뎌내야만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매화도 눈보라 치는 북풍을 견뎌내야만 멀리 향기를 보낼 수 있다. 꽃은 아침에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 고통스러운 밤을 견뎌내야 하며, 나무의 나이테는 겨울에 자란 부분이 훨씬 더 단단하듯이 말이다. 금도 처음에는 광석에 불과하지만, 1000도 이상의 뜨거운 용광로 3개를 통과해야만 금이 되고, 금이 된 뒤에는 다시 광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은 인생을 여행이라고 했다. 설산의 독수리에게 쪼아 먹힌 심장이 먼지가 돼 흩날린다고 할지라도,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만물이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져 거리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 낙엽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여 마냥 행복하지만, 이어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 죽음이 시작되듯이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삶만 있고 죽음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애써 외면하거나 착각하는 것이고, 사랑만 있고 고통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 또한 고통에 대해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인생에 굳이 성공을 규정짓는 잣대가 필요하다면 사랑이라는 잣대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사랑이 풍부하면 성공한 인생이고, 사랑이 결핍됐거나 부재한 인생이라면 실패한 인생이다.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성공은 없으리라.
“시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아니다. 시는 살아가는 데는 식량이 되지 못해도 죽어가는 데는 위안이 된다”라고 조병화 시인이 말했는데, 정호승 시인이야말로 그런 위안이 되는 시를 그동안 많이 써왔다. 특별히 <구두 닦는 소년>은 실제 구두 수선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는 좁은 공간 벽면 한 귀퉁이에 이 시를 붙여놓고 구두를 닦을 때마다 별을 닦는다고 생각하며 일하는 이가 있었다. 이 얼마나 생명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시인가! 이렇게 시는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자연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어 지금도 인간에게 위안과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