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국민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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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국민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는가?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2.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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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변호사전 국회의원칼럼·독자위원
이상권
변호사
전 국회의원
칼럼·독자위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계엄과 탄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계엄’은 단순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군사정권과 독재정치의 억압적 통치수단으로 인식된다. 5·16 군사정변, 10월 유신, 5·18 등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계엄이 동원됐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외교와 경제분야에서까지 나라가 뒤흔들렸으며, 국민은 두 편으로 나뉘어 극렬하게 적대시하던 상황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계엄과 탄핵을 사법적으로 다뤘던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도 심화돼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극한적인 상황에 이르렀고, 정치적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곧바로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정치 보복이 자행된 결과 국민들은 탄핵을 정치보복행위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혐의 등으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 중이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마은혁에 대한 임명을 보류했다. 임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일단 보류한 것이 위법한 것이어서 권한쟁의심판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일단 차치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권한대행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신청서를 헌법재판소에 접수시켰는데, 우 의장은 그 과정에서 국회의 의결절차를 누락했다. 이런 사례도 결국 행정부는 야당 단독으로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적대감을, 야당 주도의 국회는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결정에서, 국회 자체가 아니라 국회의장 또는 국회의원이 독자적, 개별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없으며, 국회의 의결을 거쳐서 청구하여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2000헌라1 결정). 헌법재판소의 과거 결정례에 따르면, 국회라는 기관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려면 국회의 의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 의결이 없이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됐다면 그 절차적 흠결로 인하여 심판청구가 각하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 결정처럼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법률기관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독립기관이기는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심리에 관한 정치적 의혹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로부터 멀어져 있다.

가장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리에서 내란혐의를 제외시킨 국회의 탄핵소추 재판을 무리하다고 할 만큼 서둘러 강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범죄 혐의로 내세운 것이 바로 내란혐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내란혐의를 제외시키고 나머지 혐의만으로 소추한 것도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 심판을 함에 있어서 국회의 탄핵과정까지 고려에 넣어서 심리해야 한다. 이는 법관이 형사재판을 함에 있어서 수사과정의 불법까지 고려에 넣어서 심리하여야 하는 것과 동일하며, 수사과정에서 수사관의 불법은 경우에 따라서 법관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탄핵소추 심판이란 헌법재판소의 업무 중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민감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그 결론도 법적인 관점과 정치적인 관점이 모두 고려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가벼운 절도범 재판하듯 지나치게 빨리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0년 넘는 경력의 법조인인 나로서도 이처럼 신속한 사법절차를 경험하지도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다. 6·25사변 당시 즉결 인민재판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 탄핵 의결 당시 내란혐의가 탄핵 사유에 포함돼 있지 아니했다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탄핵소추안이 부결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것에 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때 내란혐의를 주요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막상 국회가 내란혐의를 제외하고 소추했음에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편의적, 선별적 탄핵소추를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리한 소추인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급해도 합법적 절차는 모든 재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필수적인 요체다. 준 정치적 기관인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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