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창시자 이광수 명인(名人)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사물놀이 창시자 이광수 명인이 공연을 위해 홍성을 찾았다. 지난 19일 홍주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 ‘사물놀이 본향(本鄕)’ 공연장에서 그를 만나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사물(四物) 이야기를 들어봤다.
■ 비극을 관통하는 신명
이광수 명인의 아버지는 징용 보급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본 순사들로부터 13일간 도망 다니다 남사당패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농사철 일손을 돕는 ‘농악’만이 허용될 뿐, 조선인이 한데 모이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마당놀이가 불가했다. 훗날 해방 이후 이광수 명인의 아버지는 내포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뤄 다시금 남사당패를 꾸렸다.
“저는 여섯 살 때, 최초로 사물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여덟 살에 꽹과리를 잡았죠.”
어린 이광수는 서글픈 역사를 피해 남사당패가 된 아버지로부터 자연스레 사물(四物)을 접하게 됐고, 아버지의 칭찬이 그를 사물에 빠져들게 했다.
“유랑 극장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고, 보령 오천항에서 배를 빌려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연주한 적도 있습니다. 드럼은 무거워 배에 싣지 못하니, 장구로 리듬을 익혀 연주했죠.”
■ 양화점 기술자 그러나 결국
“어느 날 아버지께서 ‘얘야 이제 이거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친척이 서울 명동에서 양화점을 하니 거기 가서 기술을 배워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서울로 올라가 양화점에서 가피 기술을 배웠어요.”
그러나 이광수 명인은 군 생활 중에도 사비 50만 원을 들여 사물을 들여왔다.
“몇 명 모아서 가르치고 위문공연 오는 사람들을 되레 위문시켜 보냈어요. 허허허.”

■ 간절함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1970년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고성방가가 금지되면서 사물을 연주할 마당이 없어지다 보니 이광수 명인이 속한 놀이패는 새로운 궁리를 하게 된다.
1978년, 이광수 명인을 비롯한 김덕수·김용배·최종실은 마당에서 펼치던 풍물굿을 무대에 앉아서 연주할 수 있도록 사물놀이를 창단한다. 이들은 진창에 빠졌던 풍물을 건져 올려 숨을 불어넣고 회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 제3세계 음악, 전 세계에 울리다
1982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세계 타악인 대회’는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전 세계인이 모인 데다 참가 팀만 2만 명에 육박했다.
이광수 명인의 사물놀이패가 이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사물놀이가 알려지게 된다. 이어 1990년 10월엔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초청돼 판문점을 통과한다.
“세계 타악인 대회에서 수상한 이후부터는 정말 정신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그때는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돼 있을 때예요. 동독은 국립국악원이, 서독은 저희 사물놀이패가 한국문화사절단으로 활동했죠. 그러면서 많은 나라에 사물놀이를 알릴 수 있게 됐고 국내에서는 사물 가락을 제3세계 음악처럼 여겼어요.”

■ 자연을 담은 소리, 사물(四物)
“사물놀이는 자연의 소리이면서 4가지 악기지만 5가지 소리를 냅니다.”
꽹과리는 하늘을, 북은 땅을, 징은 하늘과 땅 사이를, 장구는 시간과 공간을 상징한다. 이는 악기가 내는 소리와 음의 높낮이, 타점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장구의 경우 궁편(왼쪽 면)과 열편(오른쪽 면), 두 개의 면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악기지만 2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
사물놀이는 연주곡의 이름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타악기 연주의 장르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음악적 특징으로는 영·호남 중부지방의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가락들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두 대의 꽹과리가 빠른 이채가락에서 서로 이야기하듯 싸우는 중부지방의 ‘짝쇠’는 사물놀이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네 개의 악기가 산출해 내는 각각의 배음이 어떻게 결합 되느냐에 따라 연주 때마다 듣는 느낌이 달라지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조병조 홍성군풍물연합회장은 “이광수 명인의 비나리를 들으며 새삼 우리 것이 참 좋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공연을 자주 관람했으면 한다”며 “비나리는 액살을 물리치고 액을 막아내는 액막이와 복덕을 비는 덕담을 담고 있으니 모두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광수 명인을 필두로 연주되는 사물 가락, 그 소리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육화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춤추는 듯한 환시를 불러일으킨다. 비물질의 세계에 맞닿아 시계(視界)가 트임으로써, 신명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일부는 전부가 된 뒤 이윽고 하나가 된다. 마치 나무의 몸뚱이에 찰싹 붙어 빙그르르 감싸 오르는 덤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