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광천전통시장 외곽에 자리해 광천천을 마주하고 있는 ‘훈이네집(이영전 대표)’은 이북식(황해도) 손만두로 유명한 맛집이다. 식당명은 이영전 대표의 둘째 아들 이름 끝 글자를 따 지어졌다.
키 낮은 타일 건물과 알루미늄 샷시, 빛바랜 간판 아래로 낡은 스쿠터가 세워져 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세월을 말한다. 기자는 흘러가는 시간을 훑고 밀어 훈이네집에 들어섰다. 이곳은 90년대 영화 세트장을 방문한 듯 단절된 분위기를 선물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도 ‘맛집 냄새’를 풍기는 곳이다.
한여름엔 곤욕을 치를 것이 예상되는 좁은 주방과 그에 비해 널따란 좌식 테이블이 놓여있다. 등 돌리고 앉아 식사에 여념 없는 손님을, 그다음으로는 간판을 바라본다. 고민을 거치지 않고 재빠르게 떡만둣국과 찐만두를 주문하며, 김이 모락 피어오르는 주방으로 자연스레 눈길이 따라간다. 사장님의 굽은 등도 세월을,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분명 맛있겠다’ 생각한다.
한눈에 봐도 걸쭉해 보이는 뽀얀 국물과 탐스럽게 빚어진 만두가 듬뿍인 스댕 대접이 나왔다. 떡국도 만두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양이다. 넓적하게 썰어 담근 깍두기와 갓 익은 듯한 배추김치가 뒤따라 놓인다.
친정엄마에게 배운 황해도식 레시피에
갖은 채소 아낌없이 넣어 느끼한 맛을 확 줄인
특색있는 훈이네집표 만두
눈으로 읽어 들인 것처럼 국물은 상당한 농도의 진국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트 맛이 아니다. 다음, 숟가락으로 만두를 가른다. 이 접촉으로써 만두피의 탄력이 전달된다. 상당히 쫄깃한, 이것 또한 마트 것이 아니다. 한 입 먹어 본 바, 이 그릇 안에는 모두 주인의 손을 거친 것만이 담겨있다. 또한 만두소가 독특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흔한 맛이 아니다. 귀한 맛이다. 마치 수수한 옷을 걸친 귀족 같고, 목련의 꽃말처럼 고귀하다.
이영전 대표의 부모님은 황해도 해주에 거주하다 1·4 후퇴(1950년) 때 충남 홍성으로 내려왔다. 이 대표는 부모님이 홍성으로 내려와 낳은 첫딸이라 어릴 적 ‘충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저 어릴 땐 보리밥도 먹기 어려울 정도로 다들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잘 돼 만두를 참 많이 해 먹었거든요. 동네 분들께도 나눠드리고 그러면 정말 다들 얼마나 감사해하고 잘 드시던지~ 너무 어려운 시대였으니까….”
이 대표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발견한 듯 먼 곳을 향해 고정돼 있었다.
이 대표는 1998년 당시 46세의 나이에 친정어머니께 배운 이북식 만두로 장사를 시작한다.

“애 둘 낳고 살림만 하다가 장사를 시작한 거예요. 지금 이 자리에서요. 생계 수단으로, 먹고 살려고 시작한 거죠. 처음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어요. 제가 사교성이 좋은 편도 아니고 장사 경험도 없다 보니까 아무래도 두려움이 있었어요.”
어느덧 훈이네집은 27년 차, 광천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지역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이북식 손만두 맛집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인터넷에 올리고 그러니까 멀리서도 찾아와 드시고, 딱 봐도 어디 도시 젊은이들 같은 손님들이 와서 만둣국을 많이 드시고 가셔요.”
훈이네집의 주메뉴는 만둣국이지만 직접 반죽하고 밀어 칼로 썰어낸 손칼국수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콩국수도 맛볼 수 있다. 모두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며, 돼지고기만 발주를 넣어 배달받고 나머지의 모든 재료는 이 대표가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광천시장을 돌며 장을 보고 있다.

만두소에는 돼지고기, 두부, 숙주, 김치, 당면, 양파, 대파, 부추, 달걀, 참기름, 소금·후추 등이 들어가며 만두피 또한 직접 익반죽(뜨거운 물을 사용해 반죽하는 것)해 하루 이틀간 숙성 후 사용한다. 또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국물, 육수가 정말이지 진국이다. 한우 사골을 사용하고 있으며 매일 끓이는데, 마치 씨간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기존 육수에 계속 사골을 추가해 깊은 맛을 유지한다.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기 쉬운 김 가루(고명) 또한 이 대표가 직접 굽고 부순 것이다.
“중국산은 못 쓰겠더라고요. 언젠가 한 번은 누가 써보라고 줘서 중국산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가봤는데 아이고… 김치가 검어~ 그래서 당최 못 쓰겠더라고요.”
이 대표는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없는 맛을 지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손님들이 맛있게 드셨다고 말씀하실 때 그리고 아무 말 않더라도 싹싹 비워진 빈 그릇을 볼 때 그럴 때가 가장 보람되고 좋죠. 그럴 때마다 ‘내가 더 잘해야지’ 이런 마음도 먹게 되고요. 늘 내 식구가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요. 음식은 그냥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끔 삼삼~하게 간만 잘 맞추면 되는 거지 별거 없어요.”
일흔이 넘도록 혼자 주방일을 해 온 이 대표는 넉 잡아 2년 정도 장사를 더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두커니 집에만 있는 것보단 장사하는 게 좋은데, 하고는 싶은데 이젠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저녁이면 훈이네집은 삼삼오오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웃고 떠들며 함께 만두를 빚던 날이 있었다. 시골 풍경, 시골의 정 이런 것들이 따뜻하게 뒤엉켜 시끌벅적했던 시간이. 그리고 기자는 훈이네집에서 이러한 흔적들을 보았다. 마음 한켠이 고연시리 뭉클해지는 맛과 시간이었다.
◆훈이네집 메뉴
△만둣국 9,000원 △떡만둣국 9,000원 △떡국 8,000원 △손칼국수 7,000원 △콩국수 7,000원 △찐만두 9,000원 △생만두 9,000원
ㆍ주소: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 297
ㆍ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
ㆍ전화번호: 041-641-7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