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팬데믹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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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팬데믹 시대
  • 이동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4.03 10:10
  • 호수 884호 (2025년 04월 03일)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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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동호</strong><br>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칼럼·독자위원<br>
이동호
홍동면자율방범대, 칼럼·독자위원

한주 내내 불조심을 알리는 안전문자가 계속 울렸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산불 이야기를 나눴다. 홍성도 2023년 산불로 가슴 졸이던 게 생각난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눈비가 내리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예전에 비해 논둑에서 쓰레기 태우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되는 건 언제나 한순간이다. 불은 메말랐던 산을 집어삼킨다. 산불은 지구 전체에 매년 ‘역대급’으로 발생한다.

겨울엔 산불, 여름엔 물난리가 이제는 공식처럼 반복된다. 1996년부터 2021년까지 화재는 320% 증가했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난민 수가 전쟁 난민을 앞질렀다. 지금 기후변화 속도라면 2050년엔 전 세계 인구의 1/8이 기후 난민이 될 것이라는 게 유엔 국제이주기구의 예측이다.

요동치는 재난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이 숲인데,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숲이라는 점이 지금 위기의 아이러니다. 기후위기는 불을 부르고, 산불은 기후위기를 가속한다. 인류는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특별한 종이 됐다. 생활 안전과 영양이 개선되고, 보건 문제 등이 해결됐다. 하지만 최근 200년간 자본주의는 땅속에 있던 석유와 석탄을 꺼내쓰면서 불은 ‘꺼지지 않는’ 것이 됐다. 이 불은 미래를 밝히는 등불처럼 안전한 불이 아니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이송희일 저/ 삼인/ 2024년 6월/ 28,000원

세계 곳곳, 소위 개발도상국에서 불은 꺼지지 않았다. 미세먼지는 왜 불어오는가. 우리가 값싸게 소비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됐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는 깨끗한가. 우리가 안위하는 선진국 생활은 희토류를 채굴하느라 암에 걸리는 아이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인공지능은 막대한 전기와 물을 소모한다.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도시의 불야성 등불도 다르지 않다. 한반도 서해로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동해로는 핵발전소가 늘어서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일어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인류는 원자로의 불을 여전히 끄지 못했다. 핵연료를 식히는 오염수는 지금도 바다로 배출되고 있다. 바닷물은 결국 우리 앞바다로 올 것이다. 산불 팬데믹도 뱀처럼 돌고 돌아 다음엔 누구를 덮칠지 모른다.

재난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느낀다. 헬기도 소용없고, 인공지능도 소용없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나 인간지사도 화마 앞에 한순간 잿더미가 된다. 2015년 세계 지도자들이 지키기로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1.5℃는 2023년에 넘어섰다. 절망 앞에 꺼내든 책은 바로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이다.

책은 재난에 대비해 호화 벙커를 짓고 있는 엘리트의 시선이 아니라, 산불 앞에 도망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전체 상황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저자는 ‘불’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체념이나 종말론에 압도되어서는 안 된다. 절망은 사람들을 거짓 선지자를 따르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서울 강동구에 거대한 싱크홀(땅 꺼짐)이 생겼다. 부실하게 진행된 지하철 굴착공사가 사고 가능성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고 예후도 미리부터 있었다. 서울시는 10년 전부터 계속된 지반침하 사고를 바탕으로 이에 대비해 시내 도심과 도로의 위험등급을 분석해 왔다. 하지만 등급별 주소 등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설정했다. 이번 사고로 시민 불안이 커지는 중에도, 서울시는 ‘안전 등급 공개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보를 내부 자료로만 쓴다고 밝혔다. 나는 이것이 엘리트 계층의 생각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불을 실수로 냈다는 실화범의 뉴스가 반복해 나온다. 불조심 문자는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왔고, ‘실수라도’ 처벌대상이라는 현수막도 걸렸다. 개인 책임 중요하다. 하지만 산불의 강도를 줄일 수 있고, 줄여야 하는 사회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는가. 

책은 말한다. 자연과 인간을 노예화해 온 식민주의가 산불의 뿌리다. 자본주의라는 ‘방화범’을 잡기 위해,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해야 한다고. 자본의 꺼지지 않는 불을 끄는 것이 재난을 막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재난 앞에 왜 춤을 추자고 했을까.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생명을 가진 피조물뿐이기 때문이다. 생명만이 죽음에 맞서는 대안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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