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정치에 국민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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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정치에 국민은 피곤하다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4.03 10:29
  • 호수 884호 (2025년 04월 03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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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상권</strong><br>변호사<br>전국회의원<br>칼럼·독자위원
이상권
변호사
전국회의원
칼럼·독자위원

2025년 3월 28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정부가 마은혁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지 않더라도, 헌법재판소가 결정으로 마은혁을 재판관에 임명하거나, 임시로라도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 달라는 취지의 청구를 했다. 우 의장이 기를 쓰고 종전에 했던 청구를 다시 한 것은, 마은혁의 임명 여부가 마은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별도의 기관을 두지 않고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일반 법원이나 국회에서 그 업무를 담당한다.

독일에는 재판관 16인으로 구성되는 연방헌법재판소가 있으며, 이 기관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모델이 된 기관이다.

프랑스에는 헌법위원회가 있지만 대통령 탄핵은 헌법위원회가 아닌 ‘고등재판소’가 담당하고 있다. 이 고등재판소는 법원이 아니라 상하 양원의 의원들이 전원 참가하는 매우 정치적이고 형식적인 기관이다. 프랑스에서 이 고등재판소에 탄핵이 소추된 역사가 없다.

이탈리아에는 헌법재판소가 있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에서 5명씩 추천된 재판관으로 구성되며, 헌법상 대통령 탄핵 절차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15명과 시민 재판관 16명이 함께 구성하는 특별 재판부가 심리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실제 탄핵심판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가 위헌법률심사를 하고 있지만 탄핵과 같은 제도는 아예 존재하지 않고, 헌법재판소도 없다.

미국도 헌법재판소가 없으며,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과 헌법해석을 담당하지만, 탄핵이
나, 정당해산, 권한쟁의심판 권한은 없다. 미국에서의 탄핵은 사법적 절차가 아니라 전적으로 의회가 주도하는 정치적 절차에 불과하다. 대통령이나 국무위원의 범죄가 의심되면,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상원에서 의원 2/3의 의결로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앤드루 존슨(1868), 빌 클린턴(1998), 도널드 트럼프(2019, 2021) 등 3명의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소추됐으나, 상원에서 모두 부결된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의 탄핵은 정치적 상징에 불과하다.

영국에는 헌법적 탄핵제도가 역사적으로 존재하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는 총리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다수당의 당수에 대한 소속 정당의 의결)이 탄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제도이며, 이에 대한 헌법재판은 없다. 그리하여 오늘날 영국의 총리와 장관은 정치적 압력과 여론, 당내 통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자진 사퇴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요약하면, 주요 국가 중에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심판하는 제도를 고수하는 나라는 독일과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그 헌법적 위상과 기능으로 인해 ‘입헌주의의 수호자’로 불리고 있지만, 정치적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운 기관이 아니다. 재판관이 정파적 성향에 따라 지명되고 있는 구조이어서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고 있으며, 극단적인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와 국회가 극렬한 대립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그 본질상 매우 독립적인 기관이어야 함은 자명하지만, 내부 견제장치가 거의 없으며, 국민에게 재판의 결과를 설명하거나 책임지는 구조나 노력도 매우 부족하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가장 적극적이고 중심적인 탄핵심판기관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탄핵이 실제로 작동하고, 파면까지 간 전례가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차용한 헌법재판소법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도 대통령이나 총리를 탄핵한 사례가 없으며,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2016년에 탄핵으로 파면되고, 페루에서도 최근 수년 간 대통령이 3명 연속 탄핵되거나 사임했지만, 모두 국회의 의결에 따른 것이었다.

독일도 우리만큼 강력한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있지만 대통령이나 총리 탄핵은 없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위와 같은 결과가 나타날까? 

우리의 정치문화 자체가 ‘책임 추궁형’ 구조에 가깝고, 정치권의 극심한 대립 구조 때문에 정권교체 때마다 전 정권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국민들은 수십 건의 무더기 탄핵소추 정국에서 헌법 공부까지 해야 하고, 어떤 누군가는 거리데모도 해야 하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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