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천제일장학회 이사장
칼럼·독자위원
옛날에는 효자(孝子), 효녀(孝女), 열녀(烈女), 열부(烈夫)가 많이 있었고 그 공을 기리기 위해 효자문, 열녀문 등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근래 들어 효(孝) 문화 사상이 쇠퇴하고 모범이 될만한 효자, 열녀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했다거나,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올려 드렸다거나,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부모님께 멀건 죽 한 그릇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자식이 속만 썩이지 않으면 효자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효자, 효녀, 열녀라는 단어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 곳곳에 ‘효자 정재수 소년’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그나마 효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지만, 과연 그것을 본받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자고로 충신 집안에 효자 나더라고 충과 효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에 충
성하는 사람이 부모에게 불효하는 일이 없으며,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사람이 불충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세상에 이름난 효자라도 그 부모님의 자식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객지에 살고 있는 자식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그걸로 보약을 만들어 자식에게 주고, 명절 때나 가족 행사 때 고향 집에 오면 온갖 반찬거리와 식품을 바리바리 싸서 주시는 부모님 마음을 자식이 어찌 따라가겠는가!
죽으면 썩어질 육신 얼마나 더 산다고 보약 먹고 사느냐며 오래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오직 자식이 잘 먹고 잘 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을 자식은 알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쳐서 먹고 살망정 자식만은 곧고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40년간 재직하다 퇴직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모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부모님을 봉양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호의호식(好衣好食)을 드린 것도 아니고, 용돈 한 번 드린 일도 없고, 그 흔한 효도관광 한 번 시켜 드린 일도 없다. 그저 모시고 살면서 삼시 세끼 더운 진지를 해 드렸을 뿐이다. 그저 효자도 아니고 불효자도 아닌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모시고 살았을 뿐이다.
여기서 근래 보기 드문 효자 몇 분을 소개해 보겠다.
광천읍 원촌마을에 거주하는 임호빈 사장은 아버님을 일찍 여의었으나 축산업으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고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다. 그야말로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녁에 이부자리를 살피고 아침 일찍 문안 드림)의 마음으로 노모를 모셨다.
될 수 있는 대로 모친의 뜻에 거스르지 않게 언행을 했고, 광천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역임하며 끊임없이 작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마마보이는 아니다. 모친의 뜻을 존중하되 생각이 다르면 대화를 통해 가내·외 대소사를 처리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광천의 제일 효자라는 칭송을 받게 됐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독실한 불교 신자 생활을 하고 아들(치과의사)도 독실한 불교 신자다.
또 한 분, 홍동면에 거주하는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이 계신다. 이 분은 노모를 극진히 모시면서 자기 없는 사이에 노모께서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동네에 무슨 행사가 있어도 얼굴만 내밀었다가 잽싸게 집으로 달려오는 마음 놓고 출타하지 못하고 친지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하면서 근심 걱정으로 일관했다.
남들이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데 이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아드님은 목사)로 지역에서 작은 봉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분도 홍동의 제일 효자로 정평이 나 있다.
또 한 분은 광천 출신 모 기업인에게 들은 얘기다. 본인처럼 작은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어찌나 꼬장꼬장하고 고지식한지 자기 없는 새 아버님이 돌아가실까봐 사업상 지방에 가야할 경우 부친을 뒷좌석에 태우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피곤과 과로로 쓰러질 수도 있는데 굳이 그런다는 것이다.
효행의 근본정신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지만 효행의 방법은 나라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들이 보면 유별나고 지나치다 싶겠지만 부모님의 종신을 지켜봐야겠다는 그 정신만은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우리 홍성군에도 필자가 몰라서 그렇지 위에 열거한 효자 못지않은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효자 소리를 듣는 사람의 부인은 심신이 고달프다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들이 모시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인(효부)이 모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는 산업화 시대로 다양한 직업군이 형성되고 그러다 보니 부모 자식 간에도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살았지만 그 세대들은 자식의 봉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푸르른 5월 가정의 달 어버이 날을 맞이해 점차 퇴색돼가는 효 문화 의식을 깨우치고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