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이토록 고달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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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이토록 고달픈가
  • 김혜진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5.01 10:09
  • 호수 888호 (2025년 05월 01일)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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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김혜진</strong><br>홍성녹색당<br>칼럼·독자위원<br>
김혜진
홍성녹색당
칼럼·독자위원

책 《산 사람은 살지》는 충남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의 70대 시골 토박이 ‘이기분’ 씨의 이야기다. 기분이 2010년부터 쓴 일기들과 소설 속 현재인 2019~2020년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진다. 보령 출신인 김종광 작가의 어머니가 쓰신 일기를 바탕으로 집필한 이 소설은 작가가 ‘면민 실록’을 자처하듯 실감 나는 충청도 사투리와 함께 현실적인 시골의 모습을 묘사한다. 뼛골이 쑤시고 무릎이 시려도 철 따라 모심고 고추 심고, 풀 매고 소먹이고, 고추 따고 깨 터는 농가의 일 년 살이는 한가롭고 낭만적인 미디어 속 시골의 이미지에 가려진 우리네 부모님의 애달픈 한평생을 보여준다. 젊었을 적엔 자식들 키우느라,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기분 부부의 삶은 늘 고달팠다. 

이른 나이에 시집와 시부모 병시중 들고, 무뚝뚝할 뿐만 아니라 평생 듣기 좋은 소리 한번 못 해주는 남편과 살아온 이야기, 너무 아파 자살 기도를 여러 번 할 정도로 몸이 약해서 그동안의 약값만 모았어도 남편이 그리 고생하진 않았을 거라 죄스러운 이야기, 자식들 결혼시키고도 집 마련에, 손주들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고 속상한 이야기들. 특히 70대 여성인 기분 씨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그의 일기와 이야기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 게 아닌데, 나도 하고 싶은 일, 꿈이 있던 젊음이 있었다. 늙고 병들고 망가진 모습, 나 자신도 싫다.’ 

《산 사람은 살지》 김종광/ 고유서가/ 2020년 11월 /14,500원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덧 나이 들어 불편한 육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건 남은 날들을 살아내야 하는 고달픔뿐이다. 이에 더해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기분은 매일 같이 그리움에 시달린다. 아프고 늙은 기분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아무도 모르게 목돈을 마련해 놓고 떠난 남편. 정다운 말 한마디 없었어도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걸 곱씹는 기분. 비록 실제 작가의 모습이 반영된 소설 속 큰아들을 비롯한 세 남매가 홀로 된 기분을 살뜰하게 돌보는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한 생애를 살아내고 외로이 남은 날들 앞에 선 기분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신산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건 아마도 현재 인간의 사회가 모두의 안전과 안녕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늙어감과 질병 혹은 장애는 자칫하면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두려운 일들이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도 살기 위해 폐지를 주우러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없거나 자식이라도 없으면 기분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다. 기분의 남편이 일생을 바쳐 얼마간의 목돈을 마련해 둔 이유다. 기분의 앞날을 생각하며 마음이 선뜩한 이유다. 

비단 70대 노인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잉여 자원이 커지면 사회 전체가 부유해지리라고 예상했던 시대가 있었지만, 시골이든 도시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서민들의 삶이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풍요로운 시대에 왜 우리는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미국의 페미니스트 학자 도나 헤러웨이가 말했듯 인생은 취약성을 본래 내포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생의 도중에 누구나 다양한 이유로 취약해질 수 있는 것이다. 취약성을 사회적 약자, 낙오자들의 것이 아닌 당연한 삶의 한 부분으로, 정상성의 범주로 두고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힘없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고달플 것이다.

허전하고 외롭다 한들 기분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정성스레 사람의 도리는 해야 직성이 풀린다. 차례를 지내기 전까진 남편 무덤가의 보기 싫은 나무를 베어내야 할 텐데 돈이 많이 들까 봐 걱정하다가도 결국은 사람을 써서 해결하고 만다. 남편이 직접 공들여 짓고 평생 머물던 방에 도배한 지가 오래되어 그것 또한 거슬린다. 명절이 오기 전에 기어코 도배를 하고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이렇게 기분은 죽은 남편에게도 예를 갖추고 삶의 구석구석을 돌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끌탕 말아요. 나는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기분은 남편 무덤의 풀을 뽑아댔다. 풀들도 살아보겠다고 저리 악착을 떠는데 산 사람이 못 살겠나. 살 것이다. 힘껏 살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힘껏 살 수밖에 없다. 저 풀들보다 더 악착을 떨 수밖에 없다. 

병이 들어도, 나이가 들어도 혹은 산불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아무 걱정 없이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는 꿈일까? 누구나 사랑을 하고, 도리와 정성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만은,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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