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현상의 변화 과정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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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현상의 변화 과정을 보며
  • 이동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5.08 09:22
  • 호수 889호 (2025년 05월 08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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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동호</strong><br>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칼럼·독자위원<br>
이동호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칼럼·독자위원

대선 기간임에도 끝나지 않은 내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최근 이어진 사법 내란은 엘리트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들 스스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다.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이, 세월호, 이태원 참사라는 국가의 부재가, 부실공사를 일으키는 전관예우가 왜 반복되나 싶었다. 그 풀리지 않던 의문의 답이 까발려지는 듯하다. 최근 개인적으로 충격을 준 사건은 지난 1월 서울서부법원을 점거한 폭도 사태다. 극우 선동가들의 유튜브 방송과 극렬 지지층의 극단적 분노가 만나 폭발했다. 폭도들은 법원에 들어가 시설을 파괴하고 집단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백색테러의 한 축에는 젊은 남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부끄러움 없이 테러에 스스로를 동원했다.

예전 몸담았던 직장은 남자들만 있는 곳이었다. 그곳 동료들은 스스로를 ‘돈 벌어오는 기계’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하곤 했다. 가정에 자신의 영역이 없다는 뜻이었다. 농촌에 사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어느 부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도시라는 곳은 남성성이 거의 필요 없는 곳이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몸 쓰는 일을 외부화 시킨다. 근대 이전까지 대근육을 쓰는 일은 남성이 맡아왔다. 남성 역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살림을 수행했다. 나무를 해오거나 짐승을 끄는 일을 해왔다. 집을 짓고 밭을 개간하고 흙을 팠다. 가끔은 사냥이나 징집을 나갔다. 사회적 포지션이 있었다. 

이제는 몸 쓸 일이 별로 없다. 현대인은 레저나 스포츠 같은 여가를 통해 이를 해소해 왔다. 신자유주의가 치열해지면서 양상은 또 달라졌다. 몸 쓰는 일은 낮은 일로 치부된다. 청소년기 대부분을 입시로 보내는 지금의 교육에서 몸으로 배워야 할 일을 배우지 못한다. 의자에 앉아 배우는 공부는 복잡해지는 사회관계 학습과 성인으로 성장에 제한적이다. 폭력이나 지배 같은 ‘유해한 남성성’과 ‘건강한 남성성’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사회적 포지션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을 환영하는 곳은 가상 세계다. 

이번 내란에 수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은 공론장이 되었다. 다양한 세대, 그룹의 사람들이 각자가 품어오던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들었다. 만나지 못한 세계, 다시 만난 세계였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지배와 폭력도 새어 나왔다. 유해한 남성성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파시즘은 그 토대에서 자랐다.
 

《증명과 변명》&nbsp;안희제/ 다다서재/ 2024년 12월/ 18,000원
《증명과 변명》 안희제/ 다다서재/ 2024년 12월/ 18,000원

책 《증명과 변명》은 어떤 한 명의 청년 남성을 인터뷰한 책이다. 청년 남성 개인이 갖고 있는 무력감의 기원을 탐구한다. 독특하게도 청년을 인터뷰를 하는 이는 청년의 고등학교 친구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청년의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해 개인의 이야기를 범용적으로 해석해준다. 

인터뷰 대상자인 청년 A는 삶에 관조적인 자세를 갖는다. 그의 시들한 태도,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저자는 경쟁사회에서 체화한 패배감이라고 진단한다. A는 스스로 인생에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신이 (역시) 실패자임을 인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깨끗이 죽는다. 문제는 그가 살아가는 세계(전제)가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는 아이러니다.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꼴이다. 실패를 설계했다. A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이 오답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인해, 나는 선택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왜 잘못된 안경이 아닌 자신을 탓하는 것일까. 그들의 현실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좌절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아닌 개인의 실패로 여기는 데서 온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상품화해야 하는 시대. 과거 우리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일해줄’ 미래를 말해왔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우리 자리를 ‘뺏을 것’을 걱정한다.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살지 못하는 세대. 안정이 퇴보인 세상에서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사치다. 누군가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되는 오징어게임. 이곳에서 설 자리를 잃은 이들은 외국인 이주민이나 자신보다 약자에게 화살을 돌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집단적으로 파편화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번 내란사태와 함께 출현한 파시즘과 맞닿아 있지는 않을까? ‘건강한 남성성’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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