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자본에 결박되어 가는 도시 노동(자)의 정서 깊게 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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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자본에 결박되어 가는 도시 노동(자)의 정서 깊게 다루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5.15 08:49
  • 호수 890호 (2025년 05월 15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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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운동에 적극 동참한 김용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br><br>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1980년대 후반 교사운동과 민족문학운동에 적극 동참한 김용락 시인이 1996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를 ‘창비시선’ 148번째로 펴냈다. 시집에는 표제 시를 비롯해, ‘빵’, ‘봄’, ‘별’, ‘지붕 고치기’, ‘비 오는 밤에’, ‘어머니’, ‘지상의 방 한 칸’, ‘대구 남선물산’, ‘정하수의 손’ 등 이 땅에 산업화 바람이 거세게 불던 당시의 붕괴돼 가는 전통적 농촌 노동(자)의 정서와 자본에 결박돼 가는 도시 노동(자)의 정서 등을 깊이 있게 다룬 가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새벽 집 밖에 나가보았다/초저녁 벌집처럼 눈 떠 있던 아파트/그 불빛 다 지워지고/사방은 어둠 속에서 적막하다/이따금 불면으로 불을 밝히던/ 한두 집에서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는 소리가/희미하게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아파트 단지 상가 제빵점에서는 여지껏/빵 굽는 일꾼들의 발놀림 소리가 요란하다/양팔의 굵은 알통 근육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번들거리는 땀을 훔치며/빵틀을 들어 나르는 청년들의 모습과/막 구워져 나온 껍질 두꺼운 빵을 보며/나는 슬픔을 느낀다/빵틀을 안고 가는 젊은 사내의 등 뒤로/새벽 별빛이 떨어진다/그 별빛에 묻어 사내의 땀방울도 두꺼운 빵 껍질 위로 떨어진다/아침이면 분명 누군가가 저 빵을 먹을 것이다/빵의 부드러운 속살과 함께 땀방울도 그의 입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빵 굽는 한 사람의 사내를 성장시키는데/며칠간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약간의 슬픔이 필요하듯이/빵 하나를 익히기 위해서도/밀밭을 스치고 가는 한줄기의 바람과/한 올의 태양이 필요하다 한 점 별빛과 땀방울이 필요하다/새벽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또 한 사람의 발길이 필요하다(시 ‘빵’ 전문)
 

시집에 대해 염무웅 평론가는 ‘동심적 순수와 혁명적 이상’이라는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랭보의 시를 외우고 다니던 문학소년 김용락은 그때부터 민중적 현실의 문제들을 시적 사유의 중심에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일이 빌미가 되어 그는 마침내 대학 졸업 후 취직했던 교단에서 쫓겨나 한동안 수배자의 몸으로 산간마을을 숨어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다”며 “이 시집에 실린 ‘고백’이란 작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글 쓰는 일의 무서움에 새삼 소름이 끼치는 듯 하였다”고 평했다.

김종철 문학평론가는 뒤표지 추천 글에서 “김용락은 언제나 믿을 만한 시인이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타고난 ‘흙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일 이외에 쓸데없이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며 “그의 시는 늘 밑바닥 인생에 대한 동정적 관심을 기초로 해왔지만, 최근 들어 그의 사회의식은 삶 자체의 무거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좀 더 큰 깨달음에 매개되어 한결 부드럽고 깊이 있는 것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논했다.

1959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한 시인은 1984년 창작과비평사의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계명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집 <푸른 별>,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시간의 흰 길>,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단촌역>, <하염없이 낮은 지붕>, 시 해설집 <시와 함께하는 오후>, 논문집 <민족문학논쟁사연구>, 평론집 <지역, 현실, 인간 그리고 문학>, <한류와 한국문학>, 산문집 <예술과 자유>, 대담집 <나의 스승, 시대의 스승> 등이 있다. 민족작가회의 이사와 감사 등을 역임하고, 대구시협상 등을 수상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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