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
상담학 박사
칼럼·독자위원
수형이는 열세 살, 중학교 1학년이다. 또래보다 앳되고 말수가 적다.
“몰라요.” “싫어요.” “그냥요.”
수형이가 자주 하는 말들이지만, 그 짧은 말 속에는 깊은 감정의 층이 숨어 있다. 사티어의 빙산모델에 따르면, 이 말들은 수면 위에 드러난 ‘행동’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짜증, 불안, 외로움, 죄책감 같은 감정이 있고, 그 감정 속에는 “나는 괜찮지 않다”라는 낮은 자아존중감과 “나는 혼자다”라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아이의 하루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채워진다. 자극적이고 빠른 장면들로 가득한 그 세계는,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현실이 너무 어지럽고 버거울 때, 수형이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어기제로 ‘회피형 생존유형’을 선택한다. 주위에 친구는 없고, 교실은 불편하며, 사람은 어렵다. 아이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나는 괜찮은 아이일까?”라는 물음이 맴돈다.
수형이 곁에는 아픈 외할머니가 있다. 매일 혈압약과 고지혈증 약을 챙겨 먹고, 아픈 허리와 머리를 짚으며 누우면서도 손자의 끼니를 챙기고 학교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쳐 있다. 반복되는 병원과 약, 육체의 고단함 속에서 때로는 “없는 듯이 살자”는 단념도 새어 나온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늘 손자의 필요를 먼저 생각한다. “나는 괜찮다”, “애만 잘 되면 돼”라며 스스로 감정을 억누른다. 이는 사티어가 말한 ‘회유형 의사소통 유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반대로 수형이는 “내가 할머니를 힘들게 한다”는 신념을 품고 더욱 깊이 침묵 속으로 숨어든다.
수형이의 아버지는 서울 어딘가에서 또 다른 아이를 키우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고소와 구속 위기 속에서 삶은 무너졌고, 수형이와의 연락은 끊겼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수형이는 아빠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보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고, 가면을 쓴다. 이것이 바로 사티어가 말한 의사소통과 감정 차단의 전형이다.
수형이는 말했다.
“기관사가 되고 싶어요. 기차 타고, 아빠에게 가고 싶어요.”
그 말 안에는 아빠와 다시 연결되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기차는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수형이만의 상징이자, 생존 속에서 그려보는 희망의 이미지다.
아이에게는 남동생도 있다. 떨어져 지내지만, 지난 7월 함께 유튜브를 보고 놀던 며칠이 있었다.
“좋았어요.”
사진 속 수형이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아직 꺼지지 않은 내적 자원이 아이 안에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 속 어른들은 지나치게 조용하거나, 너무 멀거나, 혹은 바쁘다.
함께 사는 외삼촌 둘도 자신만의 생존방식에 익숙하다. 회피형 또는 초이성형 생존유형으로, 감정 대신 무관심과 거리두기로 조카와의 관계를 끊는다.
가정방문상담사 임아무개 선생님이 처음 도착했을 때, 수형이의 감정은 이미 얼어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기다림의 언어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수형이의 말을 대신해 눈을 바라보고, 침묵에 함께 머물렀다. 상담자는 관계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아이의 감정과 신념에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게임 조금만 했어요.” “도움반에서 선생님이 칭찬해줬어요.”
이는 사티어모델이 말하는 자기존중감 회복의 시작이었다. 변화는 작고 느렸지만, 분명하고 유의미했다.
상담사의 연계로 수형이는 심리검사를 받았고, 학교의 특수학습지원반에 배정되었다. 교사들도, 충남센터도 아이의 속도에 맞춰 가족처럼 협력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연대는 사티어가 강조한 가족치료의 확장된 개념, 즉 ‘혈연을 넘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정서적 팀워크’를 잘 보여준다.
물론 수형이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여전히 불안하고, 조용하며, 외롭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둘러싼 어른들이 안다. 이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라, 자아존중감과 소속감을 되찾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기차를 타고 아버지에게 가고 싶어 하는 아이, 남동생과 웃던 순간을 기억하는 아이,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믿고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아이. 수형이를 둘러싼 작은 연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 아이 곁을 지키는 일은 또 다른 어른들의 몫으로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의 손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손이 조용히 놓일 수 있도록. 우리는 연결되고, 이어지고, 그렇게 아이 곁에 남는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