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예약제와 유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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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예약제와 유료화
  • 정창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11.27 09:24
  • 호수 918호 (2025년 11월 27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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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정창수</strong><br>나라살림연구소장<br>​​​​​​​칼럼·독자위원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칼럼·독자위원

국립중앙박물관이 2026년부터 예약제를 도입하고, 2027년에는 상설전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2008년 전면 무료화 이후 무려 17년 만의 변화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리며, 박물관은 더 이상 ‘무료로 즐기는 문화시설’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운영이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요금 조정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공공성과 재정 효율성을 조화시키려는 ‘문화행정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은 2021년 126만 명에서 2025년 500만 명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케이메탈 히트’, ‘양주별산대놀이’ 같은 대형 전시가 잇따라 성공하면서, 박물관은 이제 국내외 관광객이 반드시 찾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이 폭발적 증가가 운영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이 과밀해 관람의 질이 떨어지고,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문화재 보존과 시설 유지에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고, 너무 붐벼서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관람객의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박물관 측도 공공성은 유지하되,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6년부터는 사전 예약제와 온라인 취야계층을 위한 현장 무료 발권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절차 변화가 아니라, 관람객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합 고객관리시스템’ 구축의 일환이다.

예약을 통해 시간대별·국적별·연령별 관람 통계를 확보하면, 혼잡 완화는 물론 예산 효율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성과연동예산제(PLB)의 근거가 돼 문화예산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리라 기대된다. 결국 예약제는 관람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감에 의존한 예산’에서 ‘데이터 기반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스마트 문화행정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8년부터 전면 무료였지만, 시설 보수와 인력 확충은 예산 부족으로 수 년째 지연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이제는 돈을 내고 볼 때가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료화가 단순한 수익사업이 아니라 시설 개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재정 조치라고 분석했다.

현재 세계 주요 박물관의 입장료는 루브르 약 3만 원, 메트로폴리탄 4만 원, 도쿄국립박물관 약 9000원 수준이다. 이에 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17년째 무료를 유지하고 있다. 무료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세금이 투입돼야 하며, 문화재 보존·디지털화·연구조사 등은 늘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유료화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한 시도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민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체감하고, 그 보존에 동참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유료화는 공공성을 줄이려는 정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장치다. 다만 유료화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서는 안 된다. 문화 향유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니므로, 문화복지 차원의 접근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차등 요금제와 감면제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만 24세 이하, 65세 이상, 저소득층, 장애인, 학생 등은 무료 혹은 할인 관람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라는 국립기관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료화 논의는 단순히 돈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문화행정이 복지 중심에서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예약제는 ‘질서 있는 관람’으로 공공의 품질을 높이고, 유료화는 ‘책임 있는 관람’으로 재정의 자립성을 높이며, 데이터 기반 행정은 ‘지속 가능한 운영’으로 정책의 신뢰를 높인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대립하지 않고, K-컬처의 품격과 국가 문화정책의 선진화를 이끄는 세 축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변화는 한국 문화행정이 성숙하고 있다는 신호다. 무료 개방은 문화민주주의의 성과였고, 이제 유료화는 문화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진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공간’에서 ‘국민이 함께 책임지는 품격 있는 공공문화공간’으로 나아간다면, 그 변화는 단순한 입장료 조정이 아니라, 한국형 문화 거버넌스의 성숙한 진화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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