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새로운 나라의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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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새로운 나라의 꿈을 꾸다
  • 유요열<새홍성교회 담임목사·칼럼위원>
  • 승인 2013.08.26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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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라는 이름으로 홍성이주민센터를 가꾸어 온지 10년이 되었다. 2003년 9월, 나이지리아 출신 노동자 두 명과 어울렸다가 어떻게 10년 세월을 이주민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로 그때 이주민이나 다문화에 대한 나의 이해는 천박했다. 이주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코미디에서 본 '사장님 나빠요' 정도가 전부였다.

이주노동자들을 사귀면서 공장 근처를 가 보게 되었다. 공장 안에서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공장 주변의 사람들이 그들을 막 대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배우는 한국어 교재에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 같은 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에 이주노동자하면 다치고 도망 다니고 월급 떼이는 사람들이었다.

국제결혼여성들과의 만남도 충격이었다. '베트남 처녀, 도망가지 않아요' 길거리에는 이런 현수막이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있었다. 결혼한 여성들은 아무 도움도 없이 정말 맨몸으로 타국살이를 견디고 있었다. 그때는 또 왜 그리 가정폭력도 많았는지! 폭력이 지나간 현장에 뒤늦게 가서 널브러져 있는 이주여성을 만날라치면, 아무 권한도 없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낫을 들고 현수막을 떼러 다니고, 방송국을 끌어들여 이들의 사정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 때 이주민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분노를 쌓는 일이고 싸움꾼이 되는 일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가! 이제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많이 변했다. 아직 진정한 다문화사회에는 미흡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주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첨단 IT강국답게 한국사회는 다문화에 관해서도 급격한 변화를 이루어 냈다. 적어도 10년 전과 같은 상황은 이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주민에 대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제도와 지원체계를 갖춘 나라가 흔치 않을 것이다. 국제결혼가정을 위해서는 어느 취약계층보다 많은 예산과 서비스가 지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변화를 실감하는 것은, 내가 싸울 일은 점점 줄어든 반면, 이주민센터를 한다고 대접받을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제 다문화는 대세가 되었고 인기 사업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다문화를 말하고, 방송에서 늘상 이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의 미래가 무조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에서 2011년 77명의 청소년을 학살한 살인마(브레이비크)가 나왔다. 그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변화되어가는 유럽을 정화하기 위해 그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프랑스 같이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다인종 다문화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는 우리도 상황에 따라서는 다문화가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를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지난 주 8·15가 지났다. 광복 68주년이 곧 분단 68주년이 되는 이 아이러니를 여전히 우리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하기만 했던 그날, 생뚱맞게 다문화의 경험이 통일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40만 명 쯤 되고, 그들 중 중국 국적의 거주자가 53% 쯤 된다. 이는 그들이 한반도 전쟁방지에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다문화의 경험이, '말도 안 통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돈도 같이 벌고 결혼까지 했는데, 같은 민족끼리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라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많다.

내가 10년 동안 경험한 다문화는 이주민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은 위험하고 더럽다는 생각은 결국 '우리'와 '나'를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다문화가 나와 '다른' 것이 되어 차별이 되지 않고, '다(多)양한' 문화가 되어 어우러지는 자리가 된다면, 통일이라고 이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우리가 짧은 시간 안에 이주민과 다문화를 정착시킨 정성과 노력만 같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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