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착한 후 수 개월이 지나 우리는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데이트를 하는 것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한국 여성이 외국인과 데이트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좋은 시선을 받는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당시 한국사회 자체가 연인들이 손을 잡고 다니거나 키스를 하거나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그러한 광경을 찾아보기도 힘든 때였답니다. 실제로 손을 잡고 다닌 사람들은 동성의 친구들이 더 많았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제 미래 부인에게 한국에는 왜 이렇게 게이커플(동성애자)들이 많냐고 질문하자 "뭐라고요?"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설명을 해주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주말마다 만났고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게는 '그녀가 나의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한 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답니다. 물론 매우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거절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였는데, 그녀가 청혼을 받아들여주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관계를 알리고 결혼을 허락받는 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결혼을 반대할 것으로 예측했던 주변 분들과 그녀의 가족들, 친구 등 많은 분들이 긍정적으로 응답해 주셨고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장인, 장모님, 부인의 형제자매들도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주셨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 있는 우리 가족과 아내의 가족들이 만나는 과정을 거치고 10여개월 후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사람들을 왜 그리 좋아하냐고 물을 때마다 한국과 한국사람들이 정말로 진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합니다. 또한 외부의 그 누가 뭐라든 간에 제 경험에 비추어 한국 사람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답합니다. 내 부인과 저는 우리 결혼에 있어 수많은 반대와 난관에 부딪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실제로 강력하게 반대하는 분들은 없었으며 오히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주셨습니다. 결혼식이 있던 날에는 아내의 고향마을 분들이 버스를 타고 오셔서 우리의 결혼을 지켜봐 주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약간은 다르게 진행된 결혼식이었는데도 모두들 즐겁게 지켜봐 주셨고 큰 웃음소리가 나기도 하였답니다. 이후로 아내 고향마을의 어른들로부터 '마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몇 주 후면 저와 저의 부인은 17번째 결혼기념일을, 저희 딸은 14세 생일을 맞게 된답니다. 이 시점에서 제게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을 제공해 주었고 더 많은 추억을 준 한국의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지나온 18년만큼 앞으로 18년도 좋은 기억을 많이 쌓는 기간이 되기를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