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8>
목원대학교 조소과 학과장 이창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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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8>
목원대학교 조소과 학과장 이창수 교수
  • 장윤수·김현선 기자
  • 승인 2015.07.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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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조소과 학과장 이창수 교수
이창수 교수가 자신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홍성고 미술부에서 동양화로 미술과 첫 인연
대학에서 조소 접하며 조각 늦깎이로 입문해
목원대 조소과 특성화 프로그램 등 발전시켜
“홍성이 문화와 역사의 도시 되도록 도울 것”

홍성읍 옥암리가 고향인 이창수 교수는 지난 1973년 홍성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홍성고 미술부에서 동양화를 그리면서 처음으로 미술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입체인 조소를 처음 접하게 됐는데 평면인 회화보다 훨씬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생존해계신 조각가 중 가장 유명하신 윤영자 교수님 아래서 조각을 배웠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조각을 해 다른 이들보다 시작이 늦었다”는 이 교수는 뒤쳐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1년간 조각에만 몰두하는가 하면 군에서 전역한 후에도 1년간 복학을 늦추며 조각 작업에 열중했다. 이 교수는 “지금 생각해도 그땐 정말 열심히 했다”고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강의가 보통 오전 9시에 시작했는데 항상 아침 7시면 학교에 와 두 시간동안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경 강의가 끝나면 밤 11시까지 야간작업에 몰두했죠. 당시엔 자정이 통금시간이었기 때문인데, 대학원에 가서는 학교에서 숙식을 해 가며 작업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이 교수는 대학교 3학년 때 당시 미대를 다니는 학생들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던 대학미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조각부문 최고상인 국무총리 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이 교수가 조각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 교수는 조각가가 되기 위해 학부를 마친 후 대학원에 진학했고, 방학 때도 고향집에 내려가는 일 없이 작업에만 몰두했다. 작품 활동이 소홀해질까봐 결혼도 늦출 정도로 그의 조각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고. “제가 지방대학생이다 보니 수도권 대학과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또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이 교수의 부모님은 대학원을 마친 그에게 홍성에 내려와 직장을 찾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건이 좋지 않고, 자기발전의 계기 마련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대전에 남아 미술학원 강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창작활동을 했다”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다른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고, 외롭게 창작활동만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듬해 이 교수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의 서울갤러리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평면에 비해 조소가 어려운 점은 일정 규모의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조각 작업을 하다보면 소음이나 먼지, 냄새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택가에 작업실을 마련하면 일반인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죠. 또, 작업 자체가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면에서도 고된 부분이 많습니다.”

이 교수는 지난 1999년 목원대학교 조소과 교수가 된 이후 작가이자 교육자, 가장으로서 충실하기 위해 교내에 작업실을 두게 됐고, 미술대학장과 조소학과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그가 재직 중인 목원대 조소과는 수도권이남 지방미술대학에서는 유일하게 단독 학과로 유지되고 있다. “7~8년 전부터 지방대학에 위기가 찾아올 것을 예측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특히 국제교류나 해외 유학생 유치 등의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창작과 취업을 병행하도록 돕고 있는데 순수하게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전공을 살린 적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취업을 돕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조소를 필요로 하는 취업 분야가 다양하다”면서 “예술 분야는 취업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함께 장학기금을 마련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가 하면, 학과 발전기금도 마련해 수도권 대학과 견줘도 대등할만한 수준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목원대 조소과는 지난 2012년에는 70~80%의 취업률을 유지하다가 2013년과 2014년에는 취업률 100%를 달성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정년퇴임을 10년 안으로 내다보고 있는 이 교수는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 중이다. “퇴임이 앞으로 10년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작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 이 작품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 봤는데, 미술관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 교수는 “국공립 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할 수도 있지만 유지·관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직접 미술관을 만들고 운영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실 작품을 보여주는 미술관만으로 운영을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5년 전부터 식물도 재배해오고 있는데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라며 “식물원과 미술관, 체험과 교육이 어우러지는 복합형 문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은퇴 후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 어느 곳에 미술관을 열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대전이든 홍성이든 부지가 마련되는 곳에 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큰 작품은 제작 기간이 길고 힘들기 때문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최근에는 소품 위주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교수는 200~300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 교수는 개인적인 작품 활동 외에도 20년 전부터 조형물, 10여 년 전부터는 기념탑 등도 제작, 설치해오고 있다. 관내에도 그의 작품이 있는데 바로 홍주의병추모탑이다. “홍주의병추모탑은 현상공모에 당선돼 제가 설치하게 됐죠. 100점 만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지역에 설치된 기념탑보다는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성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끔 의사총에 놀러가기도 했었는데, 무엇보다 우리 지역을 지탱하는 정신적 기반인 홍주의사총에 의병추모탑을 설치하는 것은 고향에 설치한다는 것 이상의 남다른 소회를 느낄 수 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이 교수는 전국 각지에 조형물 현상공모에 당선돼 작품을 설치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공주시 상징조형물 공모에도 당선돼 설치를 앞두고 있다.

이 교수는 홍성 출신 예술인답게 홍성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다각도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홍성의 역사와 문화 유적 등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는 등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그는 지난 2006년 진행된 충남도립미술관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했는데, 당시 공주로 유치가 확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충남 서부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을 주창해 홍성 유치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도립미술관 설립은 재정난과 미술품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보류된 상태다. “자주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인 홍성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지역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바탕에 두고 문화를 활성화시킨다면 명실상부한 역사·문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금까지 20여 년간 교수이자 각종 심사, 운영, 기획, 추진위원 등으로 활동해 온 모든 노하우와 경험을 축적해 홍성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할 의향이 있습니다. 문화와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고장 홍성을 기대해봅니다.”
 


이창수 교수는…               
목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조형예술학과 주임교수, 공공미술연구소 소장, 미술디자인대학 조소과 학과장, 교수로 재직 중이며 목원대 미술디자인대학 학장과 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작품수집심의위원, MBC한국구상조각대전 심사위원, 계룡미술대전 조각부문 심사위원장, 안견미술대전 조각부문 심사위원장, 충청남도미술대전 조각부문 심사위원장, 충청남도 도립미술관 건립 추진위원 등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는 사단법인 전국조각가협회 이사, 대전광역시미술대전 초대작가, 충청남도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다. 조형물 분야에서는 대전광역시 도시디자인위원회 위원, 충청남도 공공디자인위원회 위원, 인천 남동공단 게이트조형물 현상공모 심사위원, 서김해IC 진입관문 환경조형물 현상공모 심사위원, 당진군 현충탑 건립 공모작품 심사위원, 진해시청사 조각공원 조성사업 추진위원회 추진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환경조형물 분야로는 공주시 상징조형물 공모 당선, 충청남도 도본청 및 의회청사 미술장식품 공모 당선/작품설치, 홍주의병 추모탑 현상공모 당선/작품설치, 노근리평화공원 조형물 현상공모 당선/작품설치, 청원군 충혼탑 현상공모 당선/작품설치 등의 활동을 펼쳤다. 또 2004년까지 서울과 대전, 중국, 일본을 비롯한 각지에서 총 8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목우회공모전 신한상, 충남미술대전 대상, 전국대학미전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난 1984년부터 국내외 공모전과 단체전·초대전에 400여 회 출품한 경력이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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