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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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이야기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5.12.2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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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1박 2일의 일출여행은 귀찮아진다.
부지런을 떨며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해변에 도착하여 적당한 찜질방에서 자는 둥 마는 둥하다 일출명소인 정동진으로 이동하면, 이미 그곳엔 기찻길을 가득 메우고 셀카를 찍는 청춘들로 가득하다. 생기발랄한 젊은 애들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출을 기다리는 것을 바라보면 ‘조오흘 때다’라는 독백이 절로 나온다. 최근엔 일출관광열차를 타고 오는 아줌마 부대가 부쩍 늘었다.

포항 영일만의 일출을 보러 밤새 몇 시간을 운전하며 호미곶을 찾아갔을 때는, 그 널찍한 광장에 한 무더기의 바람이 몰아닥쳐 일출은 포기하고 허름한 ‘영일만 다방’에 앉아 커피만 죽여대기도 했다. 부산의 기장 대변리 해변은 일출을 보기에는 좋은 장소였으나 해변도로가 너무 막혀서 세 시간을 차속에서 꼼짝 못했던 씁쓸한 추억의 장소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의 일출은 부덕의 소치로 인해 갈 때마다 실패했고, 덕유산의 일출은 그나마 가끔씩 성공했다. 매일 뜨고 지는 해가 뭐라고, 사람들은 해마다 새해 첫날이 되면 일출을 보기위해 산으로 바다로 저마다 추위를 무릅쓰고 명소를 찾아 떠나는 것일까.  태양신 ‘라(Ra)’에게 정말 한해의 소망을 빌러 가는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와 사는 사람을 ‘선생(先生)’이라 칭한다. 무엇인가 나보다 더 많이 세상을 알고 배운 것에 대한 인정과 존경의 의미다. 이것은 비록 사람이 아니어도 해당된다. 마을 성황당의 나무나 신령스러운 돌 앞에서 우리는 마을의 안녕과 발전, 무병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다. (홍성군청 안의 느티나무에도 해마다 태평기원제를 지낸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아서 우리 마을을 지켜보고 있는 저 커다란 것이 비록 나무나 돌일지언정,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해(태양)는 당연히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누구나 믿는다. 더구나 단 하루도 변함없이 뜨고 지는 저 태양은 놀라움 그 자체이기에 경외의 대상으로 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때문에 일년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향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소망을 기원하는 것은 미신도 아니요, 종교도 아니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소박한 예의에 다름 아니다.  

이 소박한 예의가 한동안 귀찮아지다가 다시 즐거워진 것은 우리 동네에 일출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서천 마량포구나 당진 왜목마을에서는 일출을 보는 사람들에게 떡을 주지 않는다. 홍성의 백월산 정상에서는 해마다 새해일출을 보며 영신고천대제를 지내는데, 대제가 끝나면 일출을 맞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다. 용봉산과 광천의 오서산에서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떡을 나눠주는 훈훈한 인정이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새해 첫날 마을회관에 모여 주민들이 따뜻한 떡국을 함께 하는 마을도 여럿 되고 보면, 우리 홍성이 일출을 즐기기에 은근 좋은 곳임을 알게 된다. 가까운데서 해를 보자. 멀리 간다고 꼭 멋진 일출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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