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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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물
  • 홍순영 주민기자
  • 승인 2019.05.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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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의 집을 찾아간 날, 그녀는 그릇 만드는 공방을 다녀왔다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에 농사일은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행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

오경희(64세·사진)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백화점에서 15년 정도 자신의 가게를 운영했다. 일을 마치고 야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에 피로를 풀기도 하고, 네일샵에서 손톱에 치장을 하며 자신을 꾸밀 줄도 아는 여자였다. 시골에서 흙을 묻히며 농사 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 경희 씨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홍성에 내려와 혼자 힘으로 800평의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 블루베리연구회를 통해 농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접목해서 블루베리를 키워나갔다. 블루베리는 6월에서 7월말까지 수확하는데 이때 손이 많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알고 지낸 친구들을 불러 부족한 일손을 대신한다. 그리고 수확한 블루베리는 친구들을 통해 모두 직거래 판매한다. 맛이 좋아 입소문을 타고 매번 구입해주는 단골들이 생겼다.

처음 홍성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08년도에 내려온 경희 씨의 동생이었다. ‘블루베리 농사 같이 하자.’고 동생이 제안해 홍성에 내려오게 되었다. 2009년도부터 블루베리를 심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 했는데 갑작스레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땅을 팔고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헐값에 땅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니 도저히 땅을 팔 수 없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에는 혼자는 어려울 것 같아 어머니와 함께 블루베리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농사일은 함께 할 수 없었다.

홍성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사실 농사가 아니었다. “저녁때 되면 서울은 12시가 되어도 갈 곳도 많고, 환하잖아. 처음에 여기 와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 남들은 내 나이에 놀러 다니는데, 난 이 나이에 뭐하는 건가?” 서울과 다른 시골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 힘들어할 수 없었다. 혼자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블루베리 농사가 있었고, 나의 삶이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난 돈 아껴뒀다가 애들 줘야겠다고 생각 안 해, 차라리 다리 아파 못 다니기 전에 부지런히 여행 다닐 거야.” 최근에는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친구들은 인도의 물 때문에 배탈과 설사로 고생을 했는데, 경희 씨는 인도의 물에도 끄떡없었다. 그녀의 생존력은 인도에서도 통한다. 작년에는 캄보디아, 베트남을 다녀왔다. “올해는 블루베리 수확 끝나고 10월에 중국 장가계 갈거야. 고생했으니까, 나에게 선물 줘야지.”

2년 전부터 겨울에는 블루베리 농사 짓는 회원들과 함께 ‘도예 공방’에서 여러 종류의 그릇들을 만들며 지낸다. 대부분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농한기 일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모이기가 쉽다. 그곳에서 접시, 쌀독, 냄비 등등 손수 흙으로 빚은 것들을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 “오늘은 서울 친구들이 뚝배기 주문해서 만들어야 해.” 라고 말하며 분주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이제 날이 풀리고 본격적으로 농사 준비에 한창이다. 블루베리 묘목 앞에서 하얀색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다. 앞으로 고단한 농사일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고단하지 않다. 자신을 위한 선물을 기다리기에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간다. 

 

 

 

 





 

홍순영 주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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