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킨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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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의 '삶'
  • 전만성(화가, 갈산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0.02.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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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진달래. 유화. 30㎝×26㎝. 전만성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멀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하느니라

국민학교 3학년 때 어느 여름날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우리 집 누추한 방에 유리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누나가 걸어 논 거였다. 검정 바탕에 봄꽃이 만개한 산골 풍경이었던가? 내 머리는 그림으로 기억하기를 좋아하는데도 이상하게 이것만은 그림은 기억이 나질 않고 시만 기억이 난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걸려 있는 그 액자는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매일 매일 읽고 외웠다. 눈이 가 머무는 것이 그것 밖에 없었으니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어떤 때는 잠자리에 들면서 한 번씩 외웠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은 무엇이고 속인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지금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는 말들인데 그 때는 너무나 막연하고 모호했다. 그러나 뭔가 심오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기에 누나가 내 책상위에 걸어 놓았겠지. 누나는 나에게 바다와 같은 존재였고,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하느니라'는 구절은 외울 때마다 마음 속 무거운 것을 녹여 주었다.

그 때 누나의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한창 어여뻐야 할 나이에 꿈조차 사치스럽도록 우리는 가난하고 불우했다. 그래서 누나는 일찍부터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우리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어머니의 몫이었다면 누나는 나의 외로움을 감쌌다. 배고픔보다 더 깊고 헛헛한 정신의 허기를 꿈으로 이길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우리들에게 인기 있었던 낱말들은 '우정'이니 '삶'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그것을 친구와 찍은 사진에 담아서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가지고 다녔다.

점심을 먹고 난 수학시간이었다. 오후가 아니어도 수학이 내겐 도무지 알 수 없고 따분한 과목이어서 앉아 있기가 고역스러웠다. 그때 손에 잡힌 게 사진관 할인권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원 속에 나와 친구의 얼굴이, 바탕에 푸쉬킨의 '삶' 이 새겨져 있는 사진이었다. 그것을 옆에 앉은 친구가 낚아 채다가 그만 선생님께 들켰던 것이다. 수학 선생님은 군대를 갓 제대한, 아량이 넓고 순후한 분이셨는데 시의 작자를 맞추면 용서해 준다는 거였다. 그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푸쉬킨!' 하고 튀어나와 버린 것을 생각하면 좀 멋쩍다. 선생님에게 기회를 드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푸쉬킨'과 '삶'이 나에게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함께 하였으니까. 게임이 싱겁게 끝나버리자 선생님은 후후 웃으실 뿐이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한 푸쉬킨의 '삶' 을 다시 읽을 때마다 함께 생각나는 고마운 두 분. 내 누나와 선생님. 지금은 많이 늙어 병약해 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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