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례에 흐르는 인간존중 정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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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례에 흐르는 인간존중 정신〈4〉
  • 조장연 <성균관·철학박사>
  • 승인 2021.07.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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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자 학단에서 시를 논한 것이나 악기 연주를 들으며 연주자의 심리, 인격 성숙의 정도를 가늠한 내용들이 《논어》에 보인다. 음악을 제작자 혹은 연주자의 인격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현재 《시경》 속에는 민간의 노래인 ‘풍(風)’이 들어 있는데, 이는 당시 지배계급이 백성들의 사정을 들어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수집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노래가 가지는 정치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정리, 발전시켜 음악에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예기》의 〈악기〉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예(禮)로 그 뜻을 이끌고 음악으로 그 소리를 조화시키며 정치로 그 행동을 한결같게 하고 형벌로 그 간특함을 막았다. 예나 악, 형벌, 정치는 그 궁극에 있어서는 같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다스릴 길을 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잊지 않는다. 이 둘 사이는 삼가는 마음, 즉 도덕성이 조율한다. 주체는 도덕적인 지도자이다. 따라서 《시경》의 궁정 음악은 무척 고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음악의 가사는 경건하면서 도덕적이고, 왕에게 들려주는 노래에는 도덕적인 권고가 넘친다. 마지막에는 우주의 질서와 부합해 그 질서의 한 축이 되는 인간의 도구로까지 나타난다. 《중용》이나 《주역》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격, 하늘과 땅을 잇는 주체가 세상을 조화시키는 도구가 바로 음악이다.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세상을 조화와 평화로 이끌 수 있는 거룩한 존재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수동적인 피치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되라고 했다. 음악은 바로 그런 ‘군자유’의 교양이었고,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척도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예술의 속에 담겨야 할 인격이다. 그러므로 “채색하는 일은 바탕을 먼저 다듬은 다음”이라는 말을 “형식은 사람이 먼저된 다음”이라고 해석한 제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자가 예(禮)나 음악을 통해 세상을 조화할 수 있는 것도 예와 음악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도덕적으로 성숙된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면 예에 대해 어떻게 하겠으며 음악에 대해 어떻게 하겠는가(人而不仁如禮何 如樂何)?”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 선양을 받아 세상을 이상적으로 통치한 순임금의 음악과 혁명으로 세상을 바꾼 무왕의 음악에 대한 평가이다. 공자는 두 음악 다 형식적으로는 더할 나위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인격의 차이 혹은 도덕 실천의 차이는 그 형식의 아름다움을 넘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순임금의 음악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선(善)도 다했다’고 평가했지만 무왕의 음악에 대해서는 ‘아름답지만 완전한 선(善)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순임금이나 무왕이나 모두 전설적인 임금이지만 살아간 시대의 차이가 음악 속에 그대로 녹아있었고 공자는 그것을 느낀 것이다. 전통적으로 음악은 세상을 조화시키는 도구였다. 그 속에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모습이 담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이를 아무나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인격과 음악,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만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악(樂)은 인간의 감성 혹은 자아를 표현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이는 인간을 성숙시켜 올바른 길을 가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바라보던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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