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處士)의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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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處士)의 길〈2〉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1.12.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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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왕조의 몰락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몰락이다. 왕조가 몰락할 경우 새로운 왕조로 대체하면 그만이지만 공동체의 몰락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나라들이 나타났다 사라져 간 모습을 본다. 동아시아만 해도 나라를 이룬 민족은 한족과 몽골족, 일본족, 그리고 우리 민족뿐이다. 만주족은 청(淸)이라는 대제국을 이루며 천하를 지배했지만 오늘날 그들이 이룬 나라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와 문자조차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다.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면 여간해서는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된다 하여도 수 세대를 경과한 뒤에야 겨우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처사들의 권능은 이때 발휘된다. 처사들은 벼슬 길에 나아가지 않았을 뿐 통치에 필요한 지식과 덕목을 모두 갖춘 사람들이다. 유학의 교양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출사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들이다. 보통 ‘처사’라고 하면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뭍혀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북창청풍(北窓淸風)’하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만 이들은 처사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일체 간여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은일지사(隱逸之士)’도 처사가 아니다. 그들은 처사의 적이요 민생의 적일 뿐이다.

처사는 유교적 교양의 세례를 받아 몸과 마음이 유학의 정신으로 꽉 차 있고 유학의 정신과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정치계의 번거로움과 세상의 어수선함을 싫어해서 초야에 뭍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조건만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출사해서 뜻을 펼칠 수 있는 이를테면 “관료 상비군”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다.

유학의 목표는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다. 인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인간다운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덕목이 ‘충(忠)’[盡己]이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없다. 이에 인간다움의 실현에 뜻을 둔 자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이루려는 노력과 함께 남의 인간다움도 이루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서(恕)’[推己及人]의 도덕이다. 이런 경우 정치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보다 그것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맹자는 사(士)의 본업을 묻는 왕자점(王子墊)의 질문에 ‘사는 뜻을 키워 출사하는 것’이라고 답해 줬다. ‘뜻을 키운다’고 할 때의 ‘뜻’이 ‘인간다움의 구현’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출사는 바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유학의 교양 습득을 매우 강조하며, 이를 ‘사람됨’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이런 도덕을 완성한 사람이나 이런 도덕의 취득에 정진하는 사람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존경[師表]했던 것이다. 

처사들이 보기에 국가의 기층은 민생(民生)이다. 그리고 이 민생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덕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며, 어른은 어린 이에게 바르게 사는 법을 일러 주고 어린 이는 어른의 경험에서 인생의 경륜을 배워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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