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 홍성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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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 홍성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2.11.0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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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8년 발생한 홍성지진으로 무너진 홍주성 성곽.

지난달 29일 충북에서 역대 가장 강한 4.1 규모 진천지진 발생 
역대 규모 순위 38번째로 강해… 내륙 지진으로는 12번째 강해
홍성지진 1978년 5.0 규모·진도 V(5)에 해당, 1979년 4.0 발생 

 

충북 괴산군에서 올해 한반도 발생 지진 중 최대인 규모 4.1의 지진이 지난달 29일 발생한데 이어 지난 1일 새벽 2시반 경에도 규모 2.9의 지진이 또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8시 27분께 4.1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3번의 ‘전진’(前震)도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괴산 지진은 오전 8시 27분 49초에 규모 4.1 지진이 발생하기 20분 전인 오전 8시 8분 14초에 규모 1.6 지진이 있었다. 이후 오전 8시 9분 32초와 오전 8시 27분 33초에 규모 1.3과 3.5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관측 이래 충북을 흔들었던 지진 중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도 규모가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으며, 우리나라의 중심부인 충북 지역에서 규모 4.0 이상의 강한 지진이 발생한 건 기상청이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후 처음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8시 27분쯤 충북 괴산군 북동쪽 11㎞(장연면 조곡리) 지역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다. 앞서 19분 전인 오전 8시 8분 14초에는 규모 1.6 지진이 있었고, 이후 8시 9분 32초와 오전 8시 27분 33초에도 규모 1.3과 3.5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들은 큰 규모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 내에서 본진 전에 발생하는 지진인 ‘전진’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4.1 지진(발생 깊이 12㎞) 발생 후 총 16차례의 여진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괴산 지진으로 인해 충북 지역에서는 진도V (5)가 관측기계에 기록됐고, 체감신고는 전국에서 총 168건(충북 68건, 경기 42건, 강원 21건, 서울 10건, 경북 10건, 충남6건, 대전 4건, 대구 2건, 경남·부산·인천·광주·세종 각1건 등)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중심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면서 지진의 여파는 충북뿐 아니라 전국으로 퍼졌다. 계기 진도는 충북에서 최대 5.0로 측정됐다. 계기 진도 5.0은 ‘거의 모든 사람이 진동을 느끼고, 그릇과 창문 등이 깨지기도 하며 불안정한 물체는 넘어지는 수준’을 말한다. 경북은 진도 4.0, 강원·경기·대전은 진도 3.0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을 포함해 올해 전국적으로 총 61건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규모 3.0~4.0 사이의 지진은 다섯 번 발생했지만, 4.0을 넘은 건 이번 괴산 지진이 처음인 것으로 확인됐다. 
 

무너진 가옥. 당시 지진으로 인해 길이 갈라지고 다수의 건물에 금이 가기도 했다.

■ 경주·포항지진, 국내 관측 가장 강력한 지진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1978년 기상청 계기 관측 이후, 역대 규모 순위로는 38번째에 해당한다. 육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번 지진은 역대 12번째로 강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북 지역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한 건 지진 관측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978년에는 경북 상주시 북서쪽 32㎞ 지점인 속리산 지역에서 규모 5.2의 강한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반도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통념은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경주와 포항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깨졌다. 국내에서 관측된 가장 강력한 지진은 지난 2016년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이다. 천년 유물인 ‘첨성대’가 기울어졌고, 이재민 100여 명이 발생했다. 이듬해 포항 지진(5.4)은 역대 두 번째 규모였지만 이재민은 10배 이상 많았던 지진이다. 정부는 경주 지진 이후 2041년까지 전국의 활성 단층 전수조사에 나섰다.

지진은 단층 등의 급격한 지각 변형이 원인이다. 지각이 살아 움직이는 지구엔 영원한 지진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을 역사는 그대로 보여준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한반도 지진 관련 기록만 19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에 굵직한 피해가 발생한 것만 추려도 40여 차례다. 지진 발생은 영남 지방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서울과 충북, 충남 등 내륙에서도 지진이 많이 발생했다.
 

홍성지진 발생으로 인해 부서진 학교 건물기둥. 당시 지진으로 인해 길이 갈라지고 다수의 건물에 금이 가기도 했다.

■ 홍성지진, 1978년 5.0 규모, 1979년 4.0 규모 
충남지역의 경우 홍성에서 1978년과 1979년에 각각 규모 5.0와 4.0의 지진이 발생했다. 홍성 지진(洪城地震)은 1978년 10월 7일 오후 6시 19분 52초에 홍성군 홍성읍에서 일어난 규모 5.0의 지진이다.

홍성 지진은 특히 진앙지였던 홍성읍 일원이 진도 V(5)에 해당하는 피해가 발생했을 만큼 심각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규모 5.0의 지진 피해보다 큰 것으로 평가됐다. 이렇게 큰 피해가 발생한 이유로 홍성 지진의 진원 깊이가 10km 이내로 얕았고, 한반도에서 가까운 일본의 지진 관측소에서는 뚜렷하게 기록되지 않았을 만큼 지진파의 에너지가 진앙 부근으로 매우 집중됐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후 1978년 10월 10일과 11월 24일, 1979년 1월 1일과 2월 8일(2차례), 2월 24일과 3월 12일 등 총 7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는데, 모두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유감 지진이었다.

당시 홍성지진은 홍성군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내의 지역에 심한 피해가 집중됐으며, 홍성읍 일원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발생 당시에 홍성읍내에서는 쾅하는 굉음과 함께 진동이 느껴졌고, 홍성군 일원에서 땅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다는 제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지진 결과 부상 2명의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 118동의 건물이 파손됐고 1100여 동 이상의 건물에 균열이 발생했으며, 홍성군청 등 12개 공공기관의 유리창 500여 장이 파손됐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된 사적 231호인 홍주성(洪州城)의 성곽 90m가 무너지고, 가재도구와 담장 등 부속 구조물 파손이 670여 건이 신고되기도 했다. 

또한 슈퍼마켓의 진열장이 넘어지고, 일시적인 정전과 전화 불통 현상이 있었으며, 지면에는 폭 1cm 이상, 길이 약 5~10m의 균열도 발생했다. 반면에 서울, 대전, 광주에서는 일부 민감한 사람만이 약간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정도로 지진의 여파가 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총 피해액은 2억여 원, 복구 소요 비용으로는 4억여 원으로 보도됐다. 

이 지진으로 인한 부상자는 2명이었으나 이 지진으로 홍성군에서 내진설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홍성지진으로 서울에 있던 지진계가 파손돼 잠시 우리나라에는 광주의 지진계 단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1978년 홍성지진으로 인해 국내 지진계 확충 필요성이 제기돼 한국의 지진 연구가 본격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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