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울며 겨자 먹기로 매입해야 하는 실정
군 관계자 “건축협회와 협의해 최대한 낮춘 것”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서부면 이재민들에게 제공된 임시조립주택과 관련한 주민설명회가 지난달 20일에 이어 지난 4일 개최됐다.<사진>
이날 설명회에는 홍성군 복인한 허가건축과장, 이승열 건축팀장, 김혜정 허가팀장이 참석했으며 이재민 23명이 자리했다. 이번 주민설명회에는 군 관계자들이 지난 건의사항에 대해 답변한 뒤 이재민과의 질의응답 순으로 이어졌다.
먼저 복인한 허가건축과장이 “임대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다만 토목비용과 설계비용은 건축협회와 협의해 기존 각 300만 원에서 각 100만 원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주민설명회에서 이재민들의 불만을 자아냈던 건의 사항에 대해 협의점을 마련한 것이다.

복 과장이 발언을 마치자 이재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정진학(남당리) 이재민은 “매입가 지불에 있어 일시불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분할 납부도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지난 1차 주민설명회에서도 건의된 내용이다.
군에 따르면 임시조립주택의 감정평가액은 2024년 10월 31일 기준 1479만 6000원으로 분할 납부는 불가하다. 이와 관련해 복인한 과장은 “담당부서인 회계과와 한차례 상의해 보긴 했으나 다시 한번 협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전용태(남당리) 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선거 때는 계속 왔다 갔다 찾아오면서 임시주택 설치하고 나서는 잘 처리됐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찾아온 적 있습니까”라고 따져 물으며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도저히 우리 힘으론 감당이 안 된다”며 감정을 호소했다.
복인한 과장은 “종합부처와 협의해 지속적으로 제도 건의를 하겠다”면서 “저희도 여러분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단 마음이 있고 일반 건축물 전환까지 최대한 힘 쓰겠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이 매입 여부를 결정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간은 오는 18일까지다. 매입가(감정평가액)는 오는 5월 중으로 재평가할 예정이며, 따라서 최종 매입금액은 변동될 수 있다.
또한 이재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매입가와 토목·설계 비용뿐만 아니라, 기타 철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회복을 말하기엔 짧은 시간, 2년
2023년 4월 2일은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오전부터 거센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서부면 한 마을이장은 “안 그래도 하루에 2~3번씩 산불 조심하라고 마을 방송을 하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중에 저 멀리 산에서 불길이 넘어오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생중계하듯 말했죠. 산불이 났다고.”
서부면 중리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삽시간에 신리·양곡·거차·장동·어사·송촌에 이어 남당까지 번지고 말았다. 이튿날 이호리·판교리에 이어 결성면 고산사·교향리·무량리까지 번지면서 위기를 겪었으며, 다음 날인 4일 오후 4시경 53시간 만에 주불 진화에 성공했고, 6시경부터 기적 같은 단비가 내리며 잔불까지 모두 진화됐다.
사흘간 계속된 산불로 서부면 70%에 달하는 1337ha의 산림이 전소됐고, 53가구(91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불식간에 닥친 화마는 보금자리뿐만 아니라 생계 수단인 축사·비닐하우스 등을 덮치고 검은 그을음이 돼 온 하늘을 뒤덮었다. 화염이 곳곳에서 솟구치며 매캐한 연기로 뒤덮인 서부면 일대는 마치 재앙 현장과도 같았다.
그로부터 2년, 박용희(양곡리) 이재민은 말한다.
“전혀 회복된 게 없다고 봐야 합니다. 밭이나 갈아먹어야지. 회복이라는 단어를 쓸래야 도저히 쓸 수가 없어요.”
기자가 만난 7명의 이재민은 입 모아 “심리적, 정신적 트라우마가 여전히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산불이 났던 3일은 여전히 도려내고 싶은 공포로 남아있다. 산불로부터 생겨난 이재민들의 상흔, 그곳에선 지금도 검은 그을음이 피어오른다.
“살고 싶어 사는 게 아닙니다”
이재민들은 8평 남짓 옹색한 컨테이너에서 2년여간 생활하고 있다. 군의 지원으로 임시주택을 얻어 감사한 일이나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정진학(남당리) 이재민은 “이게 급조가 되다 보니까 단열이 하나도 안 된다”며 “겨울에 장롱을 열면 물방울이 맺혀있고 동파로 아침에 일어나면 물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정진학 이재민만 겪은 게 아니었다.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모든 이재민들이 겨울철이면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정진홍(양곡리) 이재민은 “한 달 전기 요금이 51만 원이나 나왔다”며 청구서를 보여줬다. 이어 “이번 겨울에도 수도가 동파돼 18만 원 주고 수리했다”면서 “전기료도 그렇고 결과적으론 단열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지속될 것이며 임시주택을 매입할 경우, 이러한 ‘하자’ 또한 이재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박용희(양곡리) 이재민은 “저희집은 옛날 아궁이 불 때는 집 아랫목처럼 누렇게 탔어요”라며 임시주택의 또 다른 문제점을 제기했다.
한편 군 관계자는 “감정평가액은 감정평가사가 정하는 부분이라 저희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감정평가를 맡았던 ㈜통일감정평가법인과 프라임감정평가법인에 어떤 기준으로 감정평가액이 결정되는지 문의한 결과 “답변하기 어렵다”와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추후 연락드리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산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민둥산이 돼버린 서부의 산과 다를 바 없다. 녹음이 춤을 추던 산과 둔덕은 벌거숭이가 된 채 까맣게 타들어가 침묵한다. 그리고 거기엔 검정 그루터기가 박혀있다. 새까맣게 타 옴짝달싹 못 하고 박혀있는 것이 마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재민들의 처지와 닮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