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마을 돌담, 붉고 누렇고 검푸른 둥근 돌로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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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마을 돌담, 붉고 누렇고 검푸른 둥근 돌로 쌓았다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10.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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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18
경남 산청 단계마을 돌담은 강돌과 토석담이 혼재돼 있으며 2m정도로 높게 쌓았다.
경남 산청 단계마을 돌담은 강돌과 토석담이 혼재돼 있으며 2m정도로 높게 쌓았다.

철광석 묻힌 둔철산, 돌도 시냇물도 붉고, 마을도 붉은 고을이라 불려
붉은 시냇물이 둥글려 놓은 둥근 강돌로 쌓아 이은 2200m 옛 돌담길
높이가 2m에 이르는 돌담, 규모 크고 권위적 고택은 고즈넉한 분위기


지리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경남 산청군에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을 법한, 고향을 꼭 닮은 동네들이 있다. 고색창연한 한옥이 어깨를 맞대며 마을을 이루고, 굽이굽이 돌담길이 휘돌아 나가는 곳. 사람이 살지 않는 민속마을과 달리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을이 있다. 그곳이 단계마을이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新等面) 단계(丹溪)마을은 신라시대 적촌현(赤村縣)이었다. 현청이 있었고, 지금도 마을은 신등면 소재지다. 적촌이 단계로 바뀐 것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이다. 이 지역은 변진시대부터 철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신등면과 신안면의 경계에 있는 둔철산(屯鐵山)은 예로부터 쇠가 묻힌 산이라고 전해지는데 조선 초기까지 철을 주조하는 제련소가 있었다고 한다. 철광석이 붉어 시냇물도 붉고, 그렇게 마을은 붉은 고을이라 불렸다.

예로부터 단계(丹溪)가 있는 경남 산청군 신등면은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으며 유명한 ‘산청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자연히 세도가와 부농(富農)이 모여 살아 인물이 많이 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의 형국은 배(舟) 모양이어서 예로부터 물이 밀려와 수해를 자주 입었는데, 이는 돛대와 삿대가 없기 때문이라 여겨 가까이 있는 고목나무에 돛대와 삿대를 걸쳐두니 수해가 사라졌다는 마을의 전설이 전형적 농가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청의 신등면 단계마을은 280여 세대 69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50여 채의 한옥이 있다. 마을의 전통주택들은 조선후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에 건립된 부농주택으로 규모가 매우 크고 권위적이다. 마을 앞쪽에 자리한 박씨고가는 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된 것으로 지어진 지 380년이나 됐다고 한다. 경상남도민속자료 제4호인 ‘단계박씨고가’는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단계 박씨고가는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와 곳간 채가 어우러져 ‘ㅁ자형’ 평면을 갖춘 집으로 전통민가와 상류주택요소가 적절히 변형 결합돼 근대기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중류자영농가의 대표적인 살림집으로 원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권씨고가는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마을 뒤편 길가에 자리한 권씨고가는 높은 솟을대문이 특징이다. 1930년대 지은 이 집은 다른 집들과 달리 대문, 안채, 사랑채가 남쪽을 향해 ‘ㅡ’자로 앉아 있다. 특히 ‘단계 박씨고가’ 진입부의 돌담길은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으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한 편이다.

■ 단계마을의 아름다운 돌담

경남 산청 단계마을 돌담은 강돌과 토석담이 혼재돼 있으며 2m정도로 높게 쌓았다.
경남 산청 단계마을 돌담은 강돌과 토석담이 혼재돼 있으며 2m정도로 높게 쌓았다.

거리는 너무 고요한데, 조금 낮은 담장 너머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 학교가 보인다. 단계초등학교다. 너른 운동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학교의 정문은 솟을대문이다. ‘삭비문(數飛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삭비’는 ‘어린 새가 날기 위해 쉼 없이 날갯짓하는 것’을 말한다. 역시 선비고을 학교답게 대문 앞에 커다란 정자가 있다. 특히 단계초등학교 뒤편으로 펼쳐지는 단계마을 옛 담장과 골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학교의 서쪽 담장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서자 골목 앞에 ‘단계마을 옛담장’ 안내판이 있다. 단계마을의 아름다운 돌담은 여기서부터 빛난다. 담장은 주로 강돌로 쌓아 올렸으며,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돼 있다. 단계리 북단마을의 담장은 돌담과 흙돌담이 주류를 이루는데, 골목은 그렇게 좁지는 않은 편이다. 산더미 같은 나뭇짐이나 연탄을 실은 손수레 정도는 가뿐히 오갔을 너비다. 담장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홀연한 흥에 어깨춤을 추어도 담 안의 누군가는 볼 수 없고, 담 안의 누군가가 가벼운 실내복 차림으로 마당을 거닌다 한들 골목의 나는 알 수 없다. 담장은 돌담이다. 무릎 높이까지는 큼직한 막돌을 쌓았고 그 위로는 흙을 다지고 돌을 박아 올렸다. 골목은 뻗어나가고, 꺾이고, 헤쳐 모였다가 흩어지는 석성의 미로였다. 수많은 둥근 돌들, 붉고 누렇고 검푸릇한 돌들로 총길이 2200m에 이르는 돌담을 쌓았다. 붉은 시냇물이 둥글려 놓은 둥근 강돌들, 이 많은 돌들은 어디서 왔을까.

단계마을의 돌담은 무척 높이 쌓여 있다. 전통 가옥의 지붕들과 잘 어울리는 돌담길은 돌담과 토석담이 혼재돼 있으며 높이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담을 높이 쌓은 이유는 말을 타고 가면서 집 안을 훔쳐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사생활보호는 확실하겠지만 담 너머로 생활모습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은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다. 담 아래쪽인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큰 돌로 진흙을 사용하지 않고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는 하부에 사용한 돌보다 작은 돌을 사용해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 상부에는 판석을 담의 길이 방향으로 담 안팎에 3치 정도 내밀어 걸치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렸는데 이는 기와의 흘러내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마을의 담장은 전형적인 농촌의 가옥들은 물론 텃밭들과도 잘 어우러져 있다. 신등면사무소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돌을 쌓아 올린 낮은 담이 텃밭을 감싼다. 대문 옆으로 뻗어나가는 담장은 흙돌담에 기와를 올렸다. 간간이 담장 밑동을 꽉 잡고 있는 시멘트도 보인다. 골목에 ‘북단마을 경로회관’이 있다. ‘북단’은 단계마을의 자연부락이다. 마을 동편의 둑길에 올라서면 단계천이 내려다보인다. 온통 붉은 시냇물이다.

■ 예부터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
단계천 냇가는 ‘이순신장군백의종군행로유적지’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1597년 선조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로 향하던 이순신 장군이 단계천 냇가에서 아침밥을 지어먹고 합천으로 떠났다고 전해진다. 단계천에는 여전히 물은 적고 강돌이 많다. 그 많은 돌이 담장이 되었어도 여전히 돌이 많다. 물은 남쪽으로 흘러 면소재지 남단 지점에서 신등천과 만난다. 단계천과 신등천 두 개의 개천 사이는 ‘산청 쌀’이 나는 너른 들판이다. 예부터 신등면은 ‘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손꼽혔던 이유다. 자연히 세도가와 부농이 모여 살았고 인물이 많이 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제방이 없었던 시절에는 수해가 잦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을은 배(舟)의 형국인데 돛대와 삿대가 없기 때문이라 여겼단다. 그래서 마을의 고목나무에 돛대와 삿대를 걸쳐 두었더니 수해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북단의 골목을 빠져나오면 면소재지를 가로지르는 2차로 도로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가는 모두 기와를 얹은 돌 시멘트 담장이다. 파출소와 보건소 대문, 식당과 다방 등에 기와지붕도 올라 있다. 그들은 양옥의 수평 지붕과 낮은 컬러 강판 지붕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 일부 거리의 돌담은 1970년대 불이 붙었던 새마을사업의 여파로 쌓여진 시멘트 담장이었다. 1980년대에 단계마을을 한옥 보존단지로 조성하면서 많은 건물에 기와지붕 공사가 이뤄졌고 담장도 차츰 돌담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단계마을에는 지은 지 족히 100여년을 자랑하는 고택과 등록문화재 등 옛 선조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일원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된다고 한다. 산청군은 지난해 신등면 단계한옥마을을 활용하는 ‘관광 인프라구축 기본계획 수립’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단계한옥마을 관광자원개발사업 기본계획안’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추진할 예정이다. 계획안 수립과 함께 30억 원 규모의 2019년 균특예산 신청절차를 거쳐 2020년 실시설계와 사업 착공 이후 2021년까지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산청군은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된 ‘산청 단계마을 옛 담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매력 있는 한옥마을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한다. 주요내용은 마을 경관을 해치는 요소를 정비하는 담장 정비사업을 비롯해 마을안길 정비사업, 전통한옥 정원화 사업, 전통한옥 체험프로그램 개발 등이다. 이번 사업이 잘 진행돼 지역 주민들의 소득증대는 물론 산청의 관광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도록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한옥형태의 단계초등학교 교문과 돌담.
한옥형태의 단계초등학교 교문과 돌담.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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