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읍성 복원, 고도 옛 모습 살려 정체성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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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 복원, 고도 옛 모습 살려 정체성 찾아야 한다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11.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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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콘텐츠가 미래의 답이다-19
홍주읍성 복원계획에 따라 지난 2013년 복원된 홍주읍성 남문인 홍화문.
홍주읍성 복원계획에 따라 지난 2013년 복원된 홍주읍성 남문인 홍화문.

일제강점기 읍성의 강제 철폐로 대부분이 무너지거나 소실돼
홍주아문, 조양문 문루설치 때 함께 세워 흥선대원군 현판 써
홍주읍성 복원과 고도 옛 모습 되살리기, 정체성과 위상 확립


읍성은 백성들의 삶이 중심지인 것과 동시에 그 지역 일대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요새였다. 유사시에 백성들을 수용해 언제든지 농성이 가능하게끔 곡식과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늘 읍성 내부에 두고, 읍성 내부에 여러 개의 우물과 연못을 만드는 등 대비를 철저히 했다. 또한 주변의 성들과 연계해 안정적인 방어태세를 갖추는 읍성은 국가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백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노력한 제도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읍성은 지방의 행정, 경제, 문화적 중심지였고 백성들을 지키는 요새였다. 최근 들어 전국 읍성의 복원사업이 활발한 이유도 당대의 사회의 모습을 파악하기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읍성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앞으로 이러한 읍성의 복원과 보존을 활발히 해야 할 것이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읍성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입히는 일이 미래를 향한 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홍주천년의 역사문화가 깃든 사적
홍주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홍주읍성(사적 제231호)의 성벽 전체 둘레는 약 1772m이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으로 충남 서해안 일대의 고을을 관할하던 행정의 중심 치소(治所)였다. 홍주읍성의 성벽은 가야산 줄기와 연결된 야산의 나지막한 구릉을 감싸고 있으며, 산간에서 발원한 하천의 물줄기가 성벽을 따라 돌아가는 형태여서 여느 연해안 읍성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성벽은 주변 산악에서 채취한 암석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았는데, 일제강점기에 읍성의 강제 철폐로 대부분이 무너지거나 소실됐다. 홍주읍성의 경우 1978년의 홍성지진 등으로 무너진 곳은 대부분 복원된 상태다. 복원과정에서 반듯하게 쌓았던 부분을 거친 석재로 보수해 원형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성벽과 성내를 관통하던 하천과 관아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홍성군청 건물과 일부 상가들, 건물사이를 오가는 아스팔트 도로가 넓게 자리한다. 하지만 군청 안에는 수령 650여 년의 오관리 느티나무와 홍주아문(洪州衙門), 동헌(安懷堂), 여하정(余何亭) 건물 등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던 홍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홍주읍성이 자리한 현재의 홍성은 내포(內浦)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세간의 유명세를 타던 곳이었다. 지금의 예산, 당진, 서산지역에 해당하는 가야산 일대 10개의 고을을 조선시대 이전부터 ‘내포’라고 일컬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했는데, 지세가 산모퉁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큰 길목이 아니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난리도 비껴갔다. 또한 넓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다 바다를 끼고 있어 각종 곡물과 해산물이 넉넉했다. 그야말로 산세 좋고 지세가 좋아 물산(物産)이 풍부하고 난리 걱정도 없어 사람살기 좋았던 곳이 내포였던 것이다. 그 내포의 중심지가 홍성이었고 홍주의 관아가 있던 곳이 지금의 홍주읍성이다. 현재 남아 있는 홍주읍성 성벽은 약 800m 정도이다. 동문인 조양문(朝陽門)과 홍주아문 등은 모두 조선시대 건축물이지만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건물과 성벽 등이 확인됐지만 홍주읍성의 처음 축조된 연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 일대는 백제부흥운동의 최대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추정돼, 살기 좋았던 만큼 많은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홍성은 운주(運州)로 불렸는데, 운주성주(運州城主)였던 긍준이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의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긍준의 딸이 왕건의 부인이 되면서 홍주는 삼국시대 이후 다시금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래서 홍주읍성 내에서 신라 말과 고려 초의 토성이 발굴된 점은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1356년(공민왕 5)에는 왕사(王師) 보우의 고향이라 해 목(牧)으로 승격됐고, 조선 세조 때 진관체제로 지방행정체계가 개편되면서 충청도의 5군 14현을 관할하게 됐다. 이로써 홍성은 조선시대 내내 지금의 경기도 평택 이남부터 충남 서천에 이르기까지 차령산맥의 서북쪽을 관할하는 행정과 군사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홍주읍성은 둘레가 533보 2척이고,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고 했다. 1451년(문종1)에는 새로 고쳐 성의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었다.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됐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 뒤 현종 때는 한계수가, 1824년(순조 24)에는 진장(鎭將) 김계묵과 홍주목사 이헌규가 수리했다. 1870년(고종 7)에는 홍주목사 한응필이 조양문·경의문(景義門)·망화문(望華門) 등 3곳의 성문과 관영(官營)을 지었다. 동문인 조양문은 1975년 해체·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으로 ‘홍주아문’이란 현판 글씨를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다고 전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홍주아문은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1972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31호 홍주성(조양문, 아문, 산성)으로 지정됐다가, 2011년 문화재청에서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홍주읍성 복원, 고도 옛 모습 되살려야
홍성군은 지난 2005년부터 총 17만 9780㎡ 규모의 홍주읍성 옛터에 홍주의병공원과 역사문화 거리, 홍주성 탐방로, 홍주성역사관 등을 건립하는 내용의 방대한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홍성군은 옛 홍성세무서 청사 부지 4935㎡를 지난 2008년 6월부터 7월말까지 철거한 데 이어 옛 홍성지원 청사 4752㎡, 홍성지청 청사 5646㎡ 등 모두 1만 398㎡에 대한 철거작업을 마치고 옥사와 역사관 등을 건립했다. 이후 2014년 홍성군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이 연구는 지난 2004년 정비기본계획이 수립돼 장기적인 복원·정비계획을 통해 추진한 홍주읍성 복원사업이, 이후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거쳐 다양한 학술적 성과를 거뒀음에도 이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장·단기적 로드맵이 없어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문화재청의 정책변화에 대응, 사업추진의 실현가능성을 높여 홍주읍성 복원·정비사업의 내실을 기할 필요가 제기됨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보고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를 1단계 (단기)사업 기간으로 설정해 △토지 및 건축물 매입 지속 추진 △2015년까지 여장 및 편의시설 도입 △2015~2017년 북문지 복원 △2018~2019년 서문지 복원 및 서벽해체 보수 등을 추진하는 안이 제시됐다. 제시된 1단계 기간 중 토지와 건축물 매입은 성벽, 문지, 주변 순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해 매입하고, 대상 면적은 102필지 2만 3083㎡로 예상사업비는 214억 원으로 추산됐다.

홍성군은 이어 올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홍주읍성의 역사관광자원화를 위해 2019년에 문화재구역 토지매입, 북문 복원, 북문지↔조양문 발굴조사 구간 성벽 이미지 구현과 수구유적 정비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7년 동안 총 사업비 186억 원을 투자할 충청유교문화 홍주천년양반마을 조성사업도 올해부터 추진하고, 구 홍성읍사무소 일원에 자리 잡게 될 홍주천년 양반마을은 전통음식 체험 공간, 객사·향청 재현공간 등으로 테마 별로 구성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홍성군은 오는 2024년까지 4300여 억 원을 투입, 홍주읍성 일원 14만 8600여㎡를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홍주성 복원과 홍성고도역사문화관광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12년 말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충남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홍주읍성 복원과 고도(古都) 개발사업 등의 차질 없는 추진을 통해 역사문화도시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홍주성 복원사업과 고도개발 사업은 홍주읍성 성곽 1772m로 복원하고, 홍주읍성 안에 있던 관아와 옥사 등 부속건물 27동을 옛 모습으로 재현해 역사문화 도시의 면모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홍주읍성 복원사업은 훼손된 성곽과 동헌, 책실 등 관아건물을 복원하고, 홍주읍성 안에 저자거리, 옹기촌, 공예촌, 전통음식 체험거리 등 민속마을 등을 조성 홍주읍성의 옛 모습을 재현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홍주읍성 복원과 고도 옛 모습 되살리기를 통해 충남의 중심도시로 홍성의 정체성과 위상을 확립하고, 역사문화관광 활성화를 통해 지역균형발전 등을 촉진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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