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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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04.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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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관우의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3〉

홍성 홍북읍 신경리에 소재한 용봉산(龍鳳山)의 용봉사(龍鳳寺)가 있는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다보면, 용봉사 일주문을 지나 옛 용봉사 터 위쪽으로 70~80m 올라가가 보면 중턱 부근의 너른 잔디광장의 소나무 숲 품안에 높이 4m크기의 고려시대 초기 불상인 거대한 마애불과 마주하게 된다. 일명 ‘노각시 바위’라고도 불리는 바위 표면을 다듬어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불상을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55호)’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 배경 등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용봉사 마애불과 더불어 싹트기 시작한 홍주지역의 불교문화는 고려 초부터 홍주출신인 태조 왕건의 열두 번째 비인 홍복원부인과 홍주성주였던 홍규의 지원에 힘입어 크게 발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영향으로 당시 홍주지역의 불교문화를 꽃피워 고려 말로 이어지면서 홍주출신의 보우 선사가 왕사와 국사에 오르면서 홍주가 목으로 승격하는데 큰 영향을 줬는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도 이러한 영향에 힘입은 것으로 추정된다.‘신경리 마애여래입상’(홍북읍 신경리 산81)은 용봉산의 정상부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다가 갑자기 우뚝 솟은 경사진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의 특징은 먼저 불상을 새길 공간(불감;佛龕)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했다는 점이다. 얼굴 모습은 전체적으로 동글고 통통하게 표현했으며, 머리는 민머리의 소발(素髮; 머리카락의 표현이 없는 양식)이며, 지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 위에 또 하나의 머리가 더 얹혀있는 것 같은 모습의 육계가 높다. 이마 한가운데에 조그만 홈을 파듯 새겨진 백호(白毫)는 매우 뚜렷하다. 한편 눈썹은 반원형으로 가운데 부분은 깊게 조각하고 끝으로 갈수록 얕게 표현해 부드럽게 처리했으며, 눈 역시 가늘게 뜬 눈이지만 초리를 살짝 내리고 있어 위엄함 보다는 인자함을 보여주고 있다. 코와 입은 다른 표현에 비해 작은 편인데 코는 오뚝하며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턱은 얼굴이 통통함을 보여주듯 살이 겹친 것으로 묘사됐으며, 귀는 백호의 높이에서부터 거의 어깨까지 내려오도록 길게 표현했다. 목은 신체에 비해 비교적 짧지만 삼도(三道)의 표현은 뚜렷한 편이다. 목 부분은 마모가 심한 편이고 삼도(三道)의 표현도 선명하진 않으나,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얼굴에 비해 다소 왜소한 느낌을 주지만 근육은 잘 잡혔다. 마애여래입상은 통견(通肩)형식으로 법의를 착용했는데, 가슴 앞부분에서부터 U자를 그리며 내려오다가 배꼽 아래부터 옷 주름 선이 자유분방하게 흐트러지고 있다. 보통 이러한 형식은 U자를 그리며 갈라져 양 다리 위에서 각각 U자를 그리며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법의의 옷자락 표현이 통일신라시대 8세기부터 유행하던 전통을 계승하고 있긴 하지만, 그 모습이 많이 흐트러진 것이라고 한다. 불상의 손 모습을 표현한 수인(手印)은 시무외인(손바닥을 들어 밖으로 향하도록 새긴 것)만을 맺고 있는데, 오른팔은 자연스럽게 내려 다리에 붙이고, 왼팔은 들어 가슴 위에 올리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보통 시무외인(施無畏印; ‘두려워하지 마라’는 뜻의 손 자세)을 결한 불상들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상례인데, 이 불상은 왼손을 들어 올리고 있고, 오른손으로 법의 자락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설법인(說法印)을 결한듯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인은 홍주지역의 다른 불상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홍주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조각수법으로 이해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체적으로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얼굴의 인상이 풍부하고 원만할 뿐만 아니라 신체의 비례도 좋은 편으로 조각됐다. 다만 마애여래입상을 둘러싸고 있는 광배(光背)는 두 줄의 돌기로써 원형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나타냈는데, 마모가 심해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불상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의 형식적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규모가 커졌다는 점이고, 상체 부분은 깊게 조각하면서도 하체부분은 선각으로 얕게 조각한 점, 간략하면서도 도식화된 옷 주름, 약간은 미숙한 듯한 조각수법 등의 세부적 부분들을 고려할 때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오목하게 파고 들어간 마애기법과 평판적인 모습, 간략화 된 선각 기법, 발과 연화 대좌를 별도의 돌로 조각해 조합했다는 점 등을 통해 볼 때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용봉사 마애여래입상’과 함께 수인(手印)을 비롯한 전체적인 특징에서 이후에 조성된 홍주지역의 불상 조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되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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